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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 선생의 생애 개항 직후 평양 근교에서 태어난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 선생은 만 19세의 나이로 독립협회에 참여한 때부터 일생을 오로지 근대화운동과 독립운동에 바치셨다. 인재양성과 경제번영을 민족발전의 기초로 여기신 선생은 일찍부터 교육과 산업에 힘을 기울이셨으니 무실역행(行)의 정신을 바탕으로 대성학교 북미실업주식회사, 홍사단 등 여러 기관을 만들고 지도하셨다. 아울러 구국운동의 일선에 앞장 서셨던 선생은 신민회, 대한민국 민회,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등을 이끄시는 한편, 대공주의(大公主義)를 창도하여 지도이념을 체계화하고 지도자들의 대동단결을 강조하셨다. 중국 상해에서 일제 경찰에 붙잡히신 선생은 국내에 끌려와 두 차례의 옥살이 끝에 만 60세를 일기로 서거하셨다. 처음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가 1973년 부인 이혜련() 여사와 함께 이 곳 도산공원에 옮겨져 잠들어 계시다. 도산안창호선생기념사업회 강남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