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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국문학의 선도자로 이름높은 춘원 이광수선생은 1892년 음력 2월 1일 평안북도 정주에서 전주이씨 종원의 맏아들로 태어나고 58세되던 1950년 7월 12일 서울 효자동 자택에서 북쪽 공산당에게 끌려간 후 4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 소식이 묘연하다. 그의 생애와 업적 정렬과 번뇌 깨달음과 가르침 모든것이 이미 천과만으로 세어야 할 출판물로 천하에 알려졌고 길이 남아 있지아니한가 여기 낱낱이 기록할 필요도 없고 너비도 모자란다. 젊어서는 인간 본위의 자유사상을 남 먼저 도입했고 이어서 나라와 겨레섬김의 정신을 또는 도산 안창호의 인격혁신운동을 고취했으며 만년에는 종교적인 신앙과 구원의 길을 모색했으니 그런 연유로 1944년 양주군 사능 땅에 마을집을 장만하여 4년 남짓 벼개생활을 하는 동안 한해 겨울을 가까이 있는 봉선사로 입산수도한일이 있으니 곳 그의 팔촌 아우 운허 스님이 주관하는 절이다. 이제 소식 모르는 임을 안타까이 그리는 아내 허영숙과 멀리 미국땅에서 대학교수와 강사로 봉사하는 아들 영근 딸 정란 정화들이 이 터에 돌을 세워 어버이를 길이길리 사모하는 뜻을 바치고저하매 삼가 후학 주요한이 글을 짓고 원곡 김기승이 글씨를 쓰나다. 1975년 가을 기념비를 세우기위해 미주로부터 귀국했던 허영숙부인은 미처 완공을 못보신채 9월 7일 80세의 천수를 마치시고 이곳에서 머지않은 "샘내"공원묘지에 길이 누으셨으니 실로 아쉬운일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