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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133호. 몽고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1232년(고종 19)부터 1270년(원종 11)까지 39년간 사용했다. 〈고려사절요 高麗史節要〉에 의하면 최우가 1232년 6월 이령군(二領軍)을 동원하여 건립했다고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1234년 본격적인 궁궐과 백사(百司)의 건립이 이루어졌다. 규모는 작았으나 송도의 궁궐과 비슷하게 만들었고 궁궐의 뒷산도 송악(松岳)이라 했다. 고려궁의 정문은 승평문(昇平門)으로 양쪽에 3층루의 문이 2개 있었고, 궁내에 많은 관아·전각·창고·문이 있었으나 1270년 송도환도 때 모두 허물어졌다. 1631년 행궁(行宮)을 고려 옛 궁터에 건립하면서 장녕전(長寧殿)을 지어 조선 태조와 세조의 영정을 모셨고, 강화유수부 건물들과 규장외각을 건립해 많은 장서와 문서를 보관했다. 그러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책과 서류를 약탈해갔으며 많은 건물이 불탔다. 지금 고려궁지에는 1638년(인조 16) 건립된 현윤관(顯允館)이 남아 있는데 1769년 중수하면서 '명위헌'이란 현판을 붙였다. 1977년 고려궁지를 보수하면서 담을 설치하고 고려궁지 진입로 옆에 있던 강화동종을 옮기고 경역에 보도를 설치해 경내를 조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