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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성대군(密城大君)은 혹 유리왕자(儒理王子) 혹 경명왕자(景明王子)라고도 한다. 팔형제 대군(八兄弟大君)으로서 거장(巨長)이신데 휘는 분명히 전함이 없고 혹 언침(彦忱)이라고 한다. 이문정공왈(李文情公曰) 팔대군(八大君)이 다 후손이 있는되 밀성(密城)의 박(朴)이 더욱 드러났다 하니라. 배위와 및 묘소(墓所)는 불전하였는되 예전말(舊說)에 금 밀양영남루(今密陽嶺南樓)가 곧 그 유지(遺址)라고 하니라. 숭정갑술(崇禎甲戌)에 외손(外孫) 이유달(李惟達)이 부백(府伯)이 되여 본군후손(本君後孫) 국담선생(菊潭先生) 수춘(壽春)으로 함께 루상(樓上)에 설위(設位)하여 제사(祭祀)를 드리였고 신라기원(新羅紀元) 一千九百七十八年 임술여름(壬戌夏)에 폭우(暴雨)로 인하여 사태(砂汰)가 크게 나므로 거대(巨大)한 고광(古壙)이 들어났는데 주민(州民)들과 자손(子孫)들이 다 대군(大君)의 묘(墓)라고 인정하여 환봉(還封)하고 그 후에 단(壇)을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