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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익은 1332년에 태어나 1352년(공민왕 2) 이색(李穡), 박상충(朴尙衷)과 함께 과거에 급제했다. 나이로는 이색보다 네 살 어리고, 이성계(李成桂)보다 세 살, 정몽주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박익은 문인이었지만, 이성계와 함께 전장에 나가 남으로 왜구를, 북으로 홍건적과 여진족을 물리치기도 했다. 벼슬은 예문춘추관과 직제학을 지냈으며 고려가 망하던 해에는 예조판서를 역임했다. 박익이 예조판서를 지내기 전, 고향인 밀양 땅 송계마을(현재의 밀양시 부북면 제대리 송악마을)에 은둔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정몽주가 이곳에 찾아온 적이 있었다. 그때 정몽주에게 건넨 시가 있다. “송계마을 숨은 선비 집을 찾아오셨소(來訪松溪隱士家)/ 석양에 문은 닫혀 있고 꽃이 지는데(夕陽門掩落花多)/ 술통 앞에 두고 나의 깊은 마음을 묻는가(樽前問我幽閑意)/ 주렴 밖에 반쯤 보이는 저 청산이 내 마음이라오(簾外靑山半面斜).” 정몽주가 타살되고 이성계가 조선 왕조를 열자, 박익은 또다시 송계마을로 내려오고 만다. 뒷산이 송악(松岳)이고, 마을이 송계(松溪)인 것은 송도(松都, 開京)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출처 밀성박씨우당공파 송은박익 할아버지 행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