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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123 토된 유물들은 안타깝게도 대부분 일본으로 옮겨지고 현제 일부만 남아 있다. 많은 고분 중 1기는 입구 쪽을 개봉해 내 부 관람이 가능하다. 고분군 바로 옆에 있는 창녕박물관에 가면 선사시대부터 가야시대에 이르는 고분의 변천 과정과 형태, 가야시대의 창녕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한편, 송현동 고분군 아래 화왕산 입구에서 창화사를 지 나 10m 남짓 걸어 올라가면 송현동 석불좌상을 모신 누각 을 만날 수 있다. 누각 문을 열면 마애불이 조각돼 있는 큰 바위(화강암)가 온화한 표정으로 반긴다. 넓게 떡 벌어진 양 어깨와 풍만한 팔과 가슴이 문득 석굴암의 본존불을 떠올리 게 한다. 눈 주위가 심하게 마모돼 있고 보일 듯 말 듯한 옷 주름은 사실성이 떨어지지만 쉽게 볼 수 없는 통일신라시대 의 불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송현동에는 조선후기에 만든 얼음 창고인 석빙고도 있다. 언뜻 왕릉처럼 보이는 이 시설은 옛 사람들의 냉장고 역할 을 톡톡히 했는데 겨울철 저장해 놓은 얼음이 7∼8월 한여 름까지 녹지 않았다고 한다. 창녕 석빙고(보물 310호)는 경 주, 안동의 석빙고와 동일한 형태로, 미리 군청에 연락하면 내부를 둘러볼 수 있다. 창녕읍을 감싸고 있는 화왕산(火旺山, 766m)은 기(氣)가 무척 센 명산이다. 한자 이름에서 보듯‘불의 기운’ 이 강하 게 느껴진다. 실제로 화왕산은 화산활동에 의해 생겨났다. 예부터 불러왔던‘불뫼’ , ‘큰불뫼’ 라는 산 이름은 여기서 비 롯된 것이다. 능선이 온통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4월에는 진달래가 산자락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등산로는 읍내에서 바로 연결되는 자하곡 코스와 관룡사와 용선대가 있는 반대 편 옥천 코스로 나뉜다. 산세는 옥천 코스가 훨씬 장엄하다. 산 중턱에 있는 관룡사(觀龍寺)는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제자 와 함께 백일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다 화왕산 꼭대기의 연못 3곳에서 아홉 마리 용이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고 지은 것이란다. 관룡사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대웅전 (보물 212호)과 약사전(보물 146호)으로, 건물이 풍기는 고 풍스러움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균형과 안정감이 느껴져 범상치 않다. 화왕산을 떠받치고 있는 듯한 무게감은 길손의 마음을 한없이 가라앉게 한다. 관룡사에서 산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가파른 바위가 앞을 턱 막아서는데, 용선대다. 바위 꼭대기에는 가부좌를 튼 석불상이 동쪽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다. 화왕산과 하늘 과 용선대와 불상. 그 어울림이 참으로 절경이다. 화왕산에서 부곡온천 방면으로 가다 만나게 되는 영산은 창녕의 옛 숨결이 그대로 녹아 있는 곳이다. 소박하게 모여 있는 집들이 그렇고 만년교, 영산 석빙고, 영산 연지, 영산지 구 전적비 등 문화재도 여럿 남아 있어 오가는 길에 꼭 한번 둘러볼 만하다. 원님이 다리를 고쳐 주었다 하여‘원다리’ 라 고도 불리는 만년교는 길이 13.5m, 너비 3m의 무지개모양 의 석교로, 선암사 승선교(보물 400호), 흥국사 홍교(보물 563호), 벌교 홍교(보물 304호)와 함께 학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 만년교 옆에는 둥그런 연못에 5개의 섬이 있는 영 산연지가 있다. 영산지구 전적비가 있는 호국공원 언덕에 오 르면 영산 연지를 비롯해 기와집들이 촘촘히 들어찬 영산면 소재지, 그리고 그 옆에 우뚝 솟은 영취산이 시원스레 바라 보인다. 만년교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영산 석빙고는 조선 후기에 돌로 쌓은 얼음 창고로 창녕 석빙고보다 규모는 약 간 작은 편이다. 문 쪽이 높고 그 반대쪽이 낮은 형태로 둘 레는 자연석을 쌓아 돌렸으며, 장대석을 걸쳐 천장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용선대에서 본 화왕산 만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