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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I 열성 천주교 신자가 된 양반 가문의 딸 I 강완숙(姜完淑:1761~1801)은 우리나라 최초의 전도부인이자 순교자다. 천주교 최초의 여성 회장으로 한국 교회사에 나타난 여인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녀에 대한 기 록은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도 많이 남아 있다. 강완숙은 당시의 불평등하고 여성억압적인 풍습에서 탈피해 양반들과 함께 활발 한 교회활동을 벌였으며 남성들도 따라하기 힘들 정도로 깊은 신 앙심과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 강완숙은 충청남도 내포의 한 양반가문에서 태어났다. 강완숙 은 순박하기 짝이 없지만 총명함과는 거리가 먼 남편과 함께 살 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고 타고난 친절함과 상냥함으로 꽤 까다로운 시어머니의 사랑도 얻을 수 있었다. 강완숙이 천주교에 입교한 경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북경의 예수회 신부 마테오리치의『천주실의』 를 접한 후 천주교를 서슴없이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도 있 고 덕산에 천주교가 전해지자 가장 먼저 입교했다는 설도 있다. 1870년대 샤르르 달레가 저술한 『한국천주교회사』 에 의하면 강완숙은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남편의 친척 바오로라는 사람 에게서 천주교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 이야기는 강완숙에게 충격으로 다가갔고“천주라면 하늘과 땅의 주인일 것이다. 이 종교의 이름은 옳다. 그렇다면 그 교리도 진리일 것이다” 라고 생 각했다고 한다. 강완숙은 관련 서적을 구해 읽고 온 마음을 다해 천주에 대한 믿음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총명하고 자기 본분을 다하는데 있어 최선을 다했으며 매사에 열성적이었고 자제력 또한 뛰어났 다. 그녀는 먼저 가까운 친척과 가족들을 교화시키면서 이웃 여러 마을에까지 전도 활동을 펼쳤 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힘을 다해 섬기고 전도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 고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강완숙은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결국 시어머니와 자기 부모님 도 입교시키기에 이르렀다. 이같이 신앙생활에 열심이었던 그녀에게 닥쳐온 첫 번째 시련은 정조 15년(1791) 윤지충이 부 모의 신주를 태워버린 사건으로 인해 일어난 신해교난(辛亥敎難)이었다. 이때 그녀는 감옥에 갇 힌 교우들에게 음식을 날라주다가 붙잡혀 홍주목사 앞에 끌려갔다. 그러나 별다른 형벌을 받지 않고 석방됐다. 얼마 안 있어 그녀는 남편에게 전답을 보살피라고 맡기고 그와 헤어져 시어머니 강완숙 초상화(절두산 순교성지 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