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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을 살펴보면 두 명이 모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음 을 알 수 있다. 상(裳)위에 유( )를 입고 있다. 고려 여 인들의 유·상의 착용양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25) 우선 상류층의 경우 통일신라시대부터 착용되 었던 중국식의 복장인, 유를 먼저 입고 그 위에 상을 착용하는 방법을 그대로 이어 입은 경우와 일반인들 은 고대로부터 답습해온 우리 고유 복장인, 상위에 유 를 착용하는 방법을 그대로 이어오면서 약간의 변화 를 보여주는 것이다.26) 본 연구 벽화에서는 후자에 속 하는 착장 방법을 하였다. 여자가 입은 적색 상의는 엉덩이를 덮을 정도의 길 이에 교임이 깊은 중거형(重 形)의 목판깃이며 동정 을 달고 있다. 우리 옷의 특징 중 하나인 동정은 고려 시대부터 있었다고 여겨진다27)는 추측을 뒷받침 하는 몇 안되는 자료 중의 하나이다.(하연부인상, 수월관음 도)28) 대는 두르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오른쪽 여밈 끝에 작은 끈고름이나 매듭단추를 달은 것으로 추측 된다. 뒤에 언급하게 될 동남쪽 장벽에 나타난 여자의 상 의에 옆 트임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북쪽 벽화의 여인 들도 옆 트임의 유를 입은 것으로 추측된다. 치마는 신발이 보일 정도의 길이로 폭은 그다지 넓 지 않으며 불규칙한 주름이 잡혀져 있다. 유 밑으로 치마 허리끈 두 갈래가 무릎 밑 길이까지 내려왔다. 이 모습은 같은 시대로 추정되는 방배동에서 출토된 목우상과 아주 흡사하다. 여자 목우상의 유는 엉덩이가 덮일 만큼 길고 임 ( )도 마찬가지로 우임(右 )에 교임(交 )이 깊은 중 거형이다. 소매는 직배래의 착수(窄袖)형이다. 고름과 띠는 관찰할 수가 없다. 상은 길이가 땅에 닿을 만큼 길며 적색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앞모습에는 유 밑 으로 늘여진 두 갈래의 허리끈을 볼 수가 있다. 이 끈 은 치마와는 이색(異色)이며 무릎을 지날 만큼 길다.29) 벽화에 나타난 왼쪽 여인의 머리는 끝이 둥글고 볼 록한 것으로 보아 쌍수환계(雙垂環 )이며 오른쪽의 여인은 머리끝이 살짝 뻗친 것으로 보아 쌍수계(雙垂 )이다. 이는 모두 쌍계에 속하는 발양으로 쌍계는 머 리를 양쪽으로 빗는 형식을 말한다.30) 쌍수계는 두발 양측의 계를 양 살쩍31)이나 뒷머리 의 아래로 드리운 머리모양을 말하며 환(環)을 만들어 드리운 것을 쌍수환계(雙垂環 )라고 한다. 환의 형식 에는 그 모양과 위치에 따라 다양하며 수에 따라서 명 칭도 틀려진다. 이러한 쌍환의 발양은 모두 미혼을 상 징한 풍속이었다.32) 정수리에는 함께 발굴된 화문석에 나타난 연꽃 모 양의 화관(花冠)류를 하고 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 하고 소박하다. 남녀가 모두 머리에 관모(冠帽)류를 착 용한 것은 이 벽화의 내용이 공양을 위한 행렬도임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관모류는 의례용인 것이다. 유사한 복식을 하고 있는 방배동 목우상(木偶像)의 110 A 제5권 제2호 <그림 6> 박익 선생 초상화 <그림 7> 고려의 충절을 의미하는 매화와 대나무 (박익 선생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