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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담홍색이고 홍색도 있다. 이는 마치 당·송의 여 인을 보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5) 하연(河演) 부인상( 1376년 우왕2년∼1453년 단종1년) 은 동정이 달린 유를 먼저 입고 그 위에 군을 입었을 것이다.6) 비슷한 시기의 조반(趙班) 부인상( 1341년 충 혜왕 복위 2년~1401년 태종1년)은 상위에 유를 입고 포(袍)를 입고 있다. 쑥색 치마를 흰 끈으로 매어 나란 히 늘였고 그 위에 좀 더 진한 쑥색 비단 저고리를 착 용하였다. 하연 부인상과는 다른 착장법을 보이고 있 어 같은 귀족층에서도 조선 초까지는 두 가지의 차림 새가 공존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7) 주로 원(元)과 교류 당시의 복식을 관찰할 수 있는 불화를 자료로 한 연구8)에서는 남자는 대개 관모(冠 帽)류로 면류관(冕旒冠)과 통천관(通天冠), 진현관(進賢 冠), 해치관( 冠), 복두( 頭), 건(巾), 입모(笠帽) 등을 쓰고 제복(祭服), 조복(朝服), 공복(公服) 등을 착용하였 다. 부녀자들은 대개 고계(高 )한 후, 보주식(寶珠飾) 화관(花冠), 떨잠 보주식, 두건, 개두(蓋頭), 몽수(蒙首)를 착용한 후 둔부선 길이의 상의나 운견(雲肩)9)이 부착 된 상의 등을 입고 하의로는 상과 군을 착용하였다. 부모은중경중 변상도의 여자는 주름진 치마위에 옆 트임이 있는 유를 착용하고 있다.10) 고려말, 조선초의 것으로 추정되는 방배동 출토 목 우상(木偶像)은11) 서민의 복식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 료로서 본 연구자료인 밀양벽화에 나타난 복식과 매 우 유사하다. 온양박물관 소장의 실물 상의( 14세기 것으로 추정되 는 유( )의 형태)는 화장이 94cm로 지금의 저고리에 비해 길고, 길이가 56cm로 전시대에 비해 짧아졌으며 여밈이 중거형(重 形)으로 변했다.12)13) 2. 고법리 벽화묘의 조사과정과 구조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산 134번지에 위치한 송은 박익 선생의 묘는 화악산 남서쪽 기슭에 뻗은 낮 은 구릉 정상부에 조성된 밀양 박씨 문중의 선산 중심 부에 석인상(石人像), 석비(石碑), 망계석(望桂石)과 호 석(護石)을 갖춘 방형(方形墳)으로 축조되었다. 안은 도 굴꾼에 의해 훼손된 상태였으며 발견된 비닐에 의하 면 1987년을 전후해서 묘의 후면 중앙부와 전면 측부 양쪽으로 도굴이 행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굴꾼에 의해 남서쪽과 북동쪽 단벽이 훼손되고 벽화 일부분 이 박리(剝離)되는 등 훼손 상태가 극심하다는 보고를 접한 문화재청에서는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보존대책 을 세우기 위한 긴급조사단을 구성, 학술적 발굴 조사 를 실시하게 되었다. 조사는 2000년 10월 17일-11월 30 일에 걸쳐 하게 되었다. 봉분(封墳)은 가로 605cm, 세로 482cm, 높이 230cm 규모의 장방형이며 장축방향은 북동-남서향이고 피장 자의 두위(頭位)는 북동쪽이다. 이 봉분의 후면 호석 107 曺五順·劉珠利/密陽 古法里 古墳壁畵에 나타난 服飾 硏究 <그림 2> 왕비와 시녀의 복식 [관경서품변상도] <그림 3> 동정 달린 를 입고 있는 [하연 부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