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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1월 13일 목요일 12 밀양 백중놀이 12.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사적 제459호) 경남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의 밀성 박씨 묘역의 능선 경사면에 위치하고 있는 밀양 고법리 박익 벽화묘는 석인상, 갑석, 호석을 갖춘 방형분으로서, 봉분은 가로 6m, 세로 4.8m, 높이 2.3m이며, 내부 석실(길이 .5m, 폭 1m, 높이 0.8m)의 사방벽에 벽화가 그려 져 있습니다. 이 묘의 축조수법에서 주목되는 것은 수도를 갖춘 방형묘라는 점입니다. 방형묘는 고려후기에서 조선전기까지 일정 계층에서 유행한 묘제 중 하나이나, 남쪽으로 수도를 설치한 것과 병풍석이 경사 지게 설치된 것은 특이한 경우입니다. 조선전기의 횡구식 석실 중 수도가 확인된 것은 아직 없으며, 묘도와 구의 역할을 겸하는 것으로 추정되어 양식상의 원류에 대 한 검토 자료가 됩니다. 벽화는 화강암 판석 위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먼저 검정선 으로 벽화내용을 소묘한 뒤 마르기 전에 주요부위를 적·남·흑색 으로 채색하는 프레스코기법으로 그려져 있으며, 부분적으로 퇴 락되어 있으나 잔존부분에는 인물, 말, 도구 등 당시의 생활 풍속 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송은 박익 선생의 휘는 익, 초명은 천익, 자는 태시, 호는 송은, 본관은 밀성으로 고려 말의 문신입니다. 고려 공민왕조에 문과에 급제하여 소감, 예부시랑, 세자이부중 서령을 역임하고 한림문학이 되는 등 고려말 팔은 중 한 분으로, 후에 좌의정에 추종되고 저서로는 ‘송은집’이 있습니다. 벽화 발견에 의한 조선초 생활 풍습의 연구 등 고고학적 또는 회화사적 가치 외에 지석의 출토로 고려말 문신인 송은, 박익 선 생에 대한 연구에도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2000년도 태풍으로 훼손된 묘역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벽화가 발견되어 정 밀한 조사를 실시한 바 있습니다. 큰길의 안내판을 따라 작은 길로 접어들면 여러 개의 리가 나 오는데 벽화묘안내판뿐 아니라 고법리 입구 안내판조차 없습니 다. 몇 번을 헛걸음 한 끝에 노인정의 마을 어르신들께 물어 겨우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산길을 굽이굽이 올라갔으나 보이는 것은 고려 말 혹은 조선 초의 고분군들 밖에 없고 초라한 안내판만이 이 묘안에 벽 화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다만 운동을 조금하고 옛 무덤들이 ‘이렇구나’ 라는 것만 볼 수 있을 뿐이였습니다. 13. 밀양 남명리 얼음골(천연기념물 제 224호)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에 있고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 22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얼음골의 이정표가 밀양에 곳곳에 있 어 이 이정표를 따라 가시면 되고 밀양을 시내에서 울산가는 새 로 난 4차선 도로로 가게 됩니다. 오랜 옛날부터 시례빙곡으로 얼음골은 재약산(천황산) 북쪽 중 턱 해발 600~750m의 골짜기 약 9천평 지대를 말합니다. 천연기 념물 제 224호로 지정되어 있는 이 곳 얼음골은 대지의 열기가 점 점 더워오는 3월 초 순경에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7월 중순까지 유지되며, 삼복더위를 지나 처서가 되면 바위틈새의 냉기가 점차 줄어듭니다. 이런 신비한 이유로 밀양의 4대 신비의 하나로 손꼽고 있으며, 특히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초여름부터 늦가을까지 많은 관광객 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얼음골의 신비와 함께 주변에 다양한 볼거리가 산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하나인 가마볼 곡은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절벽이 태고 적부터 흘러내린 계곡물에 의해 두터운 암반이 깎여 나가 계곡이 마치 가마솥을 걸어 놓는 아궁이처럼 생겼다하여 이름이 가마볼 (암, 수 가마볼)이 되었다 합니다. 수십 미터를 미끄러지듯 쏟아지는 시원한 폭포수는 병풍럼 둘 러선 기암절벽과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외 백옥 같은 화강암이 수십만 년 동안 물에 씻겨 커다란 소 를 이루어 그 모양이 마치 절구의 호박같이 생겼다 하여 이름 붙 여진 호박소가 있습니다. 환경의 파괴와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 주의 편의 시설의 설치 등으로 결빙지라고 안내 팻말이 있는 곳에서 조차 요새는 얼음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음골 계곡 입구부터 제법 싸늘한 공기가 전신을 감싸 는 시원한 감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14. 밀양 백중놀이(중요 무형문화재 제68호) 국가지정문화재인 밀양의 중요 무형문화재입니다. 밀양 백중놀이는 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고된 일을 해오던 머슴 들이 음력 7월15일경 용날을 선택하여 지주들로부터 하루 휴가 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를 말합니다. 이러한 놀이는 호미씻기라 해서 벼농사를 주로 했던 중부 이남 지방의 농촌에서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는 머슴날이라 고 하며 지주들이 준비해 주는 술과 음식을 일컫는 꼽배기참을 먹으며 논다해서 꼽배기참놀이라고도 부릅니다. 밀양 백중놀이는 농신제, 작두말, 기, 춤판, 뒷놀이 등으로 짜여 져 진행됩니다. 농약을 치며 오방진 굿으로 농신제가 시작되면 마당에는 삼대 로 만든 농신대를 세우고 새끼를 꼬아서 만든 용을 매답니다. 농신대를 중심으로 둥글레 서서 세 번 절을 하고 엎드려 복을 비는데 그 중 한 사람은 축문을 읽습니다. 작두말타기는 머슴들 가운데 농사에서 우수한 사람을 뽑아 지 게목발로 만든 작두말에 태워 놀이판을 돌면서 농악으로 흥을 돋 우어 시위하는 놀이입니다. 춤판은 양반춤으로 시랑할미, 떨떨이, 문둥이, 곱추, 히줄대기, 봉사, 절름발이 등의 익살스러운 병신춤 을 춥니다. 이어서 범부춤과 오북춤을 추는데 범부춤은 두 사람이 번갈아 가면서 장고 잽이 앞에서 재주를 보입니다.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춤으로 다섯 사람의 북잽이들이 북을 치며 동 그랗게 원무를 추거나 원 안과 밖으로 이동하면서 춤을 추는데, 힘이 있고 멋들어진 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뒷 놀이는 모든 놀이꾼들이 화목의 뜻으로 다 같이 어울려 추 는 춤으로 장단가락도 자주 바뀌면서 제각기 개성적이거나 즉흥 적인 춤으로 꾸며집니다. 밀양백중놀이의 특징은 상민과 천민들의 한이 전체놀이에서 익살스럽게 표현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병신춤과 오북춤은 밀양에서만 전승되어 오고 있으며 배김내 시위는 이 놀이의 주된 춤사위로 춤동작이 활달하고, 오른손과 오른발이, 왼손과 왼발이 같이 움직이는 것이 특이합니다. 15. 표충비 (경남유형문화재 제 15호) 밀양 얼음골, 무봉사 태극나비, 민어사 어산불영경석과 더불어 밀양의 4대 신비 중의 하나입니다. 임진왜란 때 승려로서 국난을 극복한 사명당(1544~1610년)의 충의의 높은 뜻을 새긴 것으로 영조 (1742년)에 대사의 5대법손 남봉이 건립한 것이다. 이 비는 재질이 검은 돌로써 전면에는 송운대사의 행적을, 후 면에는 스승이신 청허당 사적을, 측면에는 표충비 사적기를 각각 새겼는데 그 높이가 380cm, 비산이 275cm, 넓이 98cm, 두께 56cm로 그 모습이 장중합니다. 비문은 영중추부사 이의현이 글을 짓고 홍문관 부제학 김진상 이 썼으며, 판흔히 한비라고도 하는데 국가에 큰 사건이 있을 때 를 전후하여 비면에 땀방울이 맺혀서 마치 구슬처럼 흐르는데 이 것을 두고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 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비석의 4면에서 여름날 농부의 이마에서 흐르는 구슬 땀처럼 맺혀 며칠씩 계속해서 많은 양이 흐르기도 하고, 앞면과 옆면 혹은 한면과 두면에서만 잠깐씩 흐르다가 그치기도 하는데, 신기한 것은 글자의 획안이나 머릿돌과 좌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비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안리 향나무(경남기념물 제 119호)는 송운대사 영당비가 있 는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903-2번지 표충비각 경내에 있습니다.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수인데 나무의 높이 1.5m, 중심 둘레 1.1m이며, 나무의 전체적인 모습은 녹색의 큰 양산을 펼쳐 세워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향나무는 사명대사의 5대 법손 태허당 남붕선사가 표충비 를 이곳에 세우고 그 기념으로 식수한것이라고 합니다. 표충비 경내는 비교적 청소도 잘되어 있고 정돈도 잘 되어 있 어 이 아름다운 문화유산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습니다. 문화재 답사가 / 굿모닝요양병원장 윞강경구의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을 찾아서- 많은 문화유산, 유서 깊은 밀양의 보물들⑦ 표충비윟 전설과 유적의 도시 밀양엔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구나 밀양 고법리 박익벽화묘 무안리 향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