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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비(三淸洞碑) 태조가 쓴 글씨라고 전하는 '삼청동(三淸洞)' 비는 높이 114cm, 폭 55cm, 두께 33cm이며, 조성 시기는 정확하게 단정할 수 없다. 전면에 삼청동이란 글자가 행초(行草)로 써져 있으며, 글자 안에는 주목을 칠했다. 또 바로 좌측에는 태조대왕필적(太祖大王筆跡)이라고 새겨놓았다. 1904년 『운수지』에 따르면 태인현감 손병호(孫秉浩)가 삼청동비를 상이암앞으로 옮기고 어필각(御筆閣)을 세웠다고 기록하고 있다. 『성수산상이암사적(聖壽山耳巖寺蹟)』에 따르면, 고려 태조 왕건이 17세(894) 무렵 이곳에 와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올린 후 깨우침을 얻고는 '환희담(歡喜潭)'을 새겼다고 하며, 조선 태조 이성계 또한 무학대사의 권유에 따라 이곳에서 기도를 올린 후 기연(奇緣)을 얻었는데, 이때 공중에서 '이공은 성수만세(聖壽萬歲)를 누리라'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이 때문에 도선암을 '성수산 상이암'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