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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미국 서북부 태평양 연안 ‘시애틀’에서의 한국독립운동 99 전했는데, 미국정부는 부족한 병력을 보충하기 위 해 1917년 5월 18일 제정한 「의무병역법」에 따라 2,390만명의 징집 대상자 가운데 280만명을 징집 하였다. 미국 정부는 1917년 6월 12일부터 내외국 인을 막론하고 군사문건에 명부를 기록하게 하였다. 그 외에 지원병을 모집했는데 200만명이 군대의 각 종 기구에 자원하였다. 재미 한인 청년들은 유럽전 선에 있는 동안 “누구든지 전쟁 때 군복무를 하면 미 국시민이 될 수 있다”는 1918년 5월 9일 개정된 징 집법 수혜를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미군에 지 원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차의석이라는 청년도 미국시민이 아니기 때문에 미군에 징집 대상이 아니 었지만, 자신이 원해서 1918년 4월 15일 미군에 징 집되었다. 제1차 대전 당시 미군에 입대한 한인들에 대한 정 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하와이에서 발행되었던 영 자신문 『스타 블레틴(The Star Bulletin)』 1919년 1 월 11일자에 의하면, 제1차 대전에 참전한 하와이 한인 2세들은 163명이라고 보도되었다. 『국민보』 1919년 3월 19일자에는 “합중국 육군에 들어가 종 군코져 하는 우리동포들의 수효가 대개 수백명”이라 고 하였다. 이정건은 1920년 8월 22일 미국 해군에 입대하 여, 주로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생활했다. 그는 해군 전투함 텍사스호에서 근무하였다. 텍사스호는 세계 각지를 순행하였기 때문에, 이정건은 텍사스호가 정 박하는 항구에는 반드시 내려서, 그곳 한인들의 정 형을 살폈다. 텍사스호는 하와이 호놀룰루, 샌프란 시스코, 시애틀 등 항구에서는 오랜 동안 정박하기 때문에 그곳의 한인들을 위한 활동을 하였다. 1923 년 2월부터 3월까지 이정건은 시애틀에 하륙하 여 생 활했으며, 그곳 한인의 정형을 『신한민보』에 알렸다. 미국 해군에 복무했지만, 이정건은 미주 한인의 사 시애틀에 있는 워싱턴주립대학 도서관 건물 한국인들이 독립을 선언하였다는 『시애틀 스타(Seattle Star)』 1919년 3월 10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