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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2025년 7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②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문제로 웅변을 기울여 일반 청중의 기쁜 마음을 환 기하였다.” 윤병구는 이승만과 함께 1905년 7월 12일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러일강화회의에서 한국의 독 립을 보장해 달라는 청원서를 제출한 바가 있다. 그 리고 1907년 8월 윤병구는 헤이그 한국특사들인 이 상설·이위종과 더불어 외교활동에 합류하게 되었다. 1912년 11월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에 당선되어 각 지방을 순방하며 한인들에게 독립정신을 일깨우 기 위해 노력하였다. 3·1운동 소식이 미주에 전해지 자 윤병구는 중앙총회장으로서, 미주 한인사회에 널 리 독립운동의 열기를 북돋았다. 또한 그는 1929년 부터 1936년까지 뉴욕 한인교회 제3대 목회자로 사 역하였는데, 교회 사역뿐만 아니라 한인유학생 지원 등 교회 밖에서까지 다양하게 활동하였다. 시애틀 한인들의 3·1절 기념식 1919년 3월 1일 우리 민족을 독립국임과 자주민 임을 전 세계에 선포하였다. 이같은 소식은 미주 각 지에 전파되어,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서 중국 상하 이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냈다. 이와 같이 미주의 한인들은 총을 들고 일본군과 직접 싸우지는 않지만 독립운동 자금을 모아서 보내는, 돈으로 싸 우는 ‘독립군’들이었다. 시애틀의 한인들도 모두 독 립의연금을 모아서 대한인국민회와 구미위원부에 보냈다. 그리고 매년 독립선언 기념일에는 각지 한 인들이 모여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시애틀의 한인들 도 1923년 3·1절 제5주년에 중국인의 집회실에 모 여 성대한 기념식을 개최하였다. 미국 해군에 근무한, 이정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미주 한인들도 미군으로 참 윤병구가 강연한 시애틀 YMCA 건물 윤병구가 강연한 시애틀 YMCA 건물 지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