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page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미국 서북부 태평양 연안 ‘시애틀’에서의 한국독립운동 97 동포들은 종종 찾아오시기를 바라나이다. 알래스카 와 및 기타 각처 어장 일에도 특별히 주의하오니 금 전을 한꺼번에 몇 백원 벌기 원하시는 동포들은 기 회를 잃지 마시옵소서. 씨애틀항 동양로동소 주무 이대우(D.W.Lee).” 이대우의 ‘동양노동소’에서는 노동을 주선할 뿐만 아니라, 한인들이 오락을 할 수 있는 당구장과 담배 가게를 같이 운영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시애틀에는 두 개의 한인 노동주선소가 있었으나, 정작 노동자 30여 명이 일이 없어 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알래스카에서 고기 잡는 일을 주선 했는데, 한인 노동자들이 이 일을 꺼렸기 때문일 것 이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윤병구의 독립운동 선전 활동 미주 한인의 최고기관은 1909년 설립된 대한인국 민회이다. 대한인국민회 중앙총회장 윤병구가 1913 년 10월 12일 시애틀 기독교청년회(YMCA)에서, YMCA를 창설한 조지 윌리암스(George William s) 의 제92번째 생일 경축회를 개최하였다. 윤병구 중 앙총회장은 미국민에게 한국에는 기독교인들이 많 으며 이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과,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미국 각지에 소개하고 다녔다. 시애틀 영자신문인 『The Seattle Post Intelligence』 는 1913년 10월 13일자 「Meeting Honor YMCA Foundation」이라는 제목으로 윤병구의 활동에 대 해 자세히 전하고 있다. 이 영자신문에 실린 기사는, 『국민보』 1913년 10월 25일자에 「윤씨의 웅변」이라 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다음과 같이 게재되었다. “한국의 정형이란 문제가 일반 청중의 마음을 환 기. 입이 있으되 나라 망한 한을 울지 못하는 우리 동 포는 그 마음이 부족한 바는 아니로되 세계 사람을 대할 때마다 입이 민첩치 못하고 혀가 심히 둔하여 그 회포를 펴지 못하는 바라. 이때를 당하여 외교에 밝은 눈을 뜨고 부모국을 위하여 힘이 있는 대로 기 회를 버리지 않고 자기의 재능을 다하는 중앙총회장 윤병구 씨는 시애틀 청년회관에서 한인의 정형이란 시애틀 한인노동주선소 광고(『신한민보』 1911년 10월 25일자) 동양노동소 광고(『신한민보』 1911년 12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