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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직(1855.11.21~1931.1.30) 건국포장(2003) 단장읍 무릉리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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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눌 선생은 1855년 김해의 한림면 금곡리에서 극재 노필연을 부친으로, 내눌 노상익에 이어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자는 치팔, 호는 소눌,자암병수, 눌인이다. 선생은 1911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안효제, 노상익, 이승희, 장성역, 이건승을 비롯한 우국지사들과 동족을 지도하며 국권회복의 방도를 모색하였다. 그러한 중에 망명객 다수가 '망국의 후학을 지도할 이는 그대뿐이다.'라는 중론을 수용하여 2년여의 망명생활을 뒤로하고 귀국하였다. 밀양 단장면에서 사연서장과 자암서당을 열어 많은 탁재와 현재를 배출하였다. 1919년에는 파리장서에 문제자 13인과 함께 서명하였다. 선생은 파리장서 서명이후 밀양 영남루 곁의 헌병대에 구금되어 고초를 겪다가 병보석으로 출감하였다. 선생은 이세 유림의 종장이었다. 세의가 평평고절하였으며, 세유가 의덕을 존숭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200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