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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2025년 8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4일 꿈에 숙부께서 생강 한 조각을 가져다 돌 아가신 아버지께 드리고, 또 꿀 한 종지를 타 드렸다. 이는 평소에 애경(愛敬)하는 뜻이 늙어서도 약해지지 않아서, 저절로 못가의 풀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가 끔 드러나는 것이다. 깨고 나서 감사한 마음에 이를 적는다. 비가 늦게야 개었다. 저녁에 이원일(李源一, 1886~1961, 애국장, 김긍 식=김동삼의 사돈[후일])이 와서 잤다. 5일 이원일과 조카 문식, 손자 창로가 함께 마 록구(馬鹿溝)를 향해 출발하였다. 밭을 구하고 집을 물어볼 계획도 있고, 아울러 여러 곳에 인사를 나눌 뜻도 있기 때문이다. 손자 창로에게 찬합에다 밥을 싸게 하였는데, 내가 음식점 밥에 익숙하지 않기 때 문이다. 가다가 요지령(鬧枝嶺) 아래 이르렀을 때, 해가 이 미 정오인지라, 길가의 풀밭에 앉아 보따리를 풀었 다.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젓가락으로 조촐한 끼니 를 절반 넘게 먹었을 때, 아이들이 옥수수를 꺾어 와 서 불에 구워 먹으니 배고픔을 기분 좋게 면하였다. 고개를 넘어 영춘원(永春源)의 이종기가 사는 곳에 도착하였다. 서리 내린 뒤의 황량하고 엉성함이 보 는 사람으로 하여금 탄식하게 하였다. 잠시 쉬다가 이강호의 집을 들렀더니 종질녀가 문에서 기다리다 웃으며 맞아주었다. 그 정겨움이 마치 날 보기를 아 비 대하듯이 하였다. 저녁에 밀가루 수제비를 내왔 는데, 내 식성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주인과 손이 나 이가 걸맞지 않았다. 이희중에 대해 물으니, 이미 합 밀로 떠났다고 하여 연홍(燕鴻)의 탄식이 있었다. 6일 이강호 및 아이들과 함께 마록구로 넘어 갔다. 그곳은 토지가 널리 개간되어 있고 오곡이 즐 비하며 또 들판에 살기 적합한 땅도 있기 때문이었 다. 다만 한 가지 해괴한 소문이 있어 발붙이고 살 생 각이 점점 줄어들었다. 낮에는 권동직의 집에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이 강호의 집으로 가서 잤다. 권동직의 집에다 나귀를 놓아두고, 그에게 쇠붙이를 갈아 달라고 하였다. 7일 평해 사람 이씨 상가에 문상 가는 일 때 문에 대우구의 누이 집(=석주 이상룡의 집)으로 가다 가, 이종표의 집에서 점심으로 수제비를 먹었다. 이 날 저녁에 매부(이상룡) 집에 도착하였다. 거의 반년 이나 떨어져 있었으니 그 기쁨이 어떠하였겠는가! 마침내 붓 한자루를 외손자 계오(桂吳=이상룡의 손 자 이병화)에게 건내 주었다. 이는 어린 인재를 장려 하고 이끌어주려는 뜻이었다. 8일 그대로 누이 집에 머물렀다. 아이와 손자 들은 강남호(姜南鎬, 이명 姜好錫, 1894~1950? 애족 장)의 집에서 자고, 남호와 함께 왔다. 고개 너머 이 종각이 보러 왔는데, 연배가 서로 비슷하여 더욱 고 맙고 기뻤다. 9일 이형(李兄)에게 초대를 받고, 만초(이상룡) 와 함께 가서 밀가루 수제비를 먹었다. 10일 그대로 머물면서 책을 읽기도 하며 시간 을 보냈다. 아침저녁으로 매끼 보리밥을 차려 주었 다. 잘 익은 것을 정성스럽게 찧은 것이라 흰 쌀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