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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➋ • 미국 ‘토종’ 오하이오주에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호소하다 95 게 기뻐 뛰며, 우선 우리 앞길을 진행하여 나갈 데 대 하여 일심 동력하기로 결심하였다”고 답전을 보냈 다. 미국 동부의 한인들과 오하이오대학에 재학중 인 학생들은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 의 옛 수도 필라델피아에서 개최된 ‘제1차 한인회의’ 에 참석하였다. 임병직의 『회고록』에 의하면, “이박 사는 그해 그러니까 1919년 9월(4월 - 필자) 미국 필 라델피아시에서 개최되는 재미한인회의에 기필 참 석하여 달라는 통지를 우리에게도 보냈던 것이다” 그래서 제1차 한인회의에는 오하이오대학에 재학중 인 임병직·김현구·홍승국·장기한 4명의 한인 학생들 이 참석하였다. 임병직은 제1차 한인회의 행정적인 모든 사무를 도맡아서 처리하였다. 그리고 김현구는 유일한과 함께 「한국 국민의 목표와 열망에 대한 결 의문」을 작성하였다. 이 「결의문」은 제1차 한인회의 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이었고, 또 향후 미주 한인사 회의 독립국가 논의의 핵심적 내용이 담겨있다. 오하이오주 한국친우회의 결성 제1차 한인회의 개최 이튿날인 1919년 4월 15일, 의장 서재필이 조직적인 활동과 선전을 위해 미국 내 친한(親韓) 외국인들을 많이 확보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였다. 제1차 한인회의 폐회 이후 서재필이 필 라델피아에서 처음으로 ‘한국친우회(League of The Friends of Korea)’를 결성하였다. 서재필은 1919 년 5월 2일 필라델피아 성삼위교회(The Church of The Holy Trinity)의 톰킨스(Floyd W. Tomkins) 목 사의 지지와 협력으로 각 분야 저명인사 22명을 초 청하여 한국친우회를 발기하였다. 국내의 3·1독립선언 소식을 듣고, 오하이오 웨슬 리안대학에 재학하던 이병두와 이춘호가 오하이 주에서 한인친우회를 조직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 하였다. 그 결과 1919년 8월 2일 오하이오주 티핀 (Tiffin)시에서 공동회를 개최하여, 회장 슈만(A. C. Shuman) 박사, 부회장 워너(E. H. Warner) 목사, 회 계 오스카 쉬라더(Oscar Shrader), 서기 제이콥 마 「한국인의 목표」 영문 팸플릿오하이오대학 유학생 김현구 오하이오대학 재학생 김현구와 유 일한이 작성한 한국인의 목표와 열 망(1919년 4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