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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규(1889.12.15~1951.10.15) 애족장(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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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시 단장면 사연리 1079
김홍규 선생은 1889년 12월 15일 사연리에서 아버지 김만두와 어머니 최대년의 4남 2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선생은 1919년 4월 이후 대종교 활동과 신민부 군자금 모금등 활발한 독립운동을 하였다. 선생은 1810년 윤창선, 손봉현, 손호, 윤치백 등과 함께 대종교에 입교하여 활동하는 한편,2017년 음력 9월, 대구에서 휸홍선, 손양윤, 신헌규, 이병무등과 회합을 갖고, 지방의 부호 자제들로 부터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로 모의하였다. 1927년 11월 초순 선생의 먼친척이자 손봉현의 장인인 밀양군 단장면 사연리의 부호 김ㅌ진에게 3,000원을 받아내고 그의 아들 김용출을 포섭하여 북간도로 데려가 대종교인으로 만들라는 임무를 수행하던중 일제에 발견되어 1928년 8월 19일 선생을 비롯한 손봉현, 윤창선, 손양윤, 이병묵, 손호, 신현규(일명 신양춘)등 총 7명이 '대정8년 제정 제7호 위반' 등의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체포되었다. 이때 선생은 2919년 7월 1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유가증권 사문서 위조, 사기, 제령 7호위반, 강도, 상해죄 등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