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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2025년 7월 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①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15일 [증조부 정자부군 기일] 사동(砂洞)의 식구들이 와서 고향으로 간다고 알린 다. 어찌 그리 근력이 활발하며 의지가 굳는지, 마치 이장군(李將軍=이릉)이 하양(河陽)에서 소중랑(蘇中 郞=소무)을 이별할 때와 흡사하다. 16일 조카 홍식이 안동현(安東縣)에서 돌아왔 다. 성로와 응로가 모두 나왔다. 낮에는 김달의 집에 서 초청을 받아 밀가루 수제비를 실컷 먹고 왔다. 17일 선산 김복규가 채규봉의 편지를 가지고 와서 좋은 뜻으로 의탁하였다. 글재주가 있고 의학 의 이치에 통달하여서 자못 의지할 만하였다. 또 용 궁 조해제와 함창 김현재도 모두 이런 뜻으로 와서 보았다. 운서(雲瑞)라고 자를 쓰는 최봉규라고 하는 사람도 곧 와서 볼 것이라 하였다. 만식, 규식 두 조카와 형식이 너덧 군데를 둘러보 고 와서 말하기를, ‘거주할 만한 곳은 있으나, 땅값이 너무 비싸서 잔약한 힘으로 마련할 수 있는 게 아니 다’라고 하였다. 18일 하재우, 권 순삼, 김경삼, 권동봉 이 와서 보고 아침밥 을 먹고 갔다. 다 안 동 사람이다. 오후에 권동직, 박기종이 와 서 보았다. 이계동(李 啓東, 본명 이봉희, 김 대락의 매부 이상룡 의 아우, 1990년 독립장)이 어제 봉천부(奉天府, 현 재 瀋陽)에서 돌아오다가 내가 여기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민물고기 몇 꿰미를 가져다 주었다. 고마운 일이다. 류인식이 와서 나가겠다는 뜻을 알리므로 5언 절 구 네 수를 지어보이고, 돌아가 그의 어른께 아뢰라 고 하였다. 상길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응로가 돌아가는 편 에 보냈다. 19일 출발하여 우거하는 곳으로 돌아오다가 청구 등지를 들러 보았다. 우박이 지니간 곳에는 푸 른 풀이라곤 조금도 없는데, 듣자니 여덟 식구가 살 아갈 일이 너무나 애잔하고 불쌍하다. 마침내 손님맞 이하는 폐를 끼치기 싫어 일부러 강 건넛집을 알과 (戞過)하였다. 가는 비가 조금 적시는데다 또 뱃길이 지체되어 어둠 속에 가야 할 염려가 있으므로, 빨리 달려서 집으로 갔더니 산에 해가 비로소 기울었다. 김대락을 찾아왔던 이계동(이봉희)의 국립대전현충원에 있는 묘와  묘비(국가보훈부 제공) 김대락의 집에 자주 왕래한 이문 형(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