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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독립운동사 ➊ • 김대락의 백하일기 ⑱ 89 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70년간 마음을 서로 준 사람 은 오직 이 사람뿐이다. 괴롭도록 그리움이 멀리까 지 미친 것이 또한 만나서 정을 나눌 수 있었던 시절 에서 비롯된 것이니, 이 뜻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이날 저녁에 비가 왔다. 청나라 사람이 오이 3개 를 대접했는데, 한 입 먹으니 문득 메마른 창자가 시 원해지는 것을 느꼈다. 종수씨(從嫂氏)가 또 북어 10 마리로 선반에 둘 반찬거리를 도와주니, 고마운 일 이다. 15일 비오다 저녁에 갬. 칠래가 여러 날 괴로워하니 속상하고 가련하다. 개고기로 보신을 시키려 하였으나, 음식을 모두 물 리치니 걱정스럽다. 영식이 들어왔다. 16일 꿈에 응례 아재와 상길 족종(族從), 순극 아재를 만났다. 무씨를 뿌렸다. 김영근의 어머니가 그 아들을 데리고 오고, 정동수가 와 보았다. 저녁에 이시영, 이관직, 이규봉이 모두 와 보았다. 봉천(奉 天, 현재 瀋陽)에서 온 북경(北京)의 요즘 소식을 대강 들었다. 17일 비. 형식이 이관직, 이규봉과 함께 추가가로 갔다. 근 심스럽고 적막할 때 베개에 기대어 곧 잠이 들었다 가, 매번 쾌당(증손자)과 기몽(외증손자)에게 걷어 차인다. 잠이 깨어 마침내 웃으면서 율시 한 수를 지었다. 18일 저녁에 갬. 황병일과 종손자 성로가 둘째 며느리 세 모녀를 데리고 통화현으로 갔다. 종손녀 처녀 아이도 따라 서 돌려보냈다. 육손이 그 짐을 지고 갔다. 며느리는 잘 아픈 사람이고 딸들은 모두 아무것도 모르는 여 린 아이들이니 어떻게 잘 갈지 걱정하는 마음을 놓 을 수 없다. 김영근이 와서 고기값을 독촉하였으나 바로 갚지 못하였으니, 탄식할 일이다. 19일 저녁에 위당에 우거하는 신용관이 창로 에게 보낸 우식의 편지를 가지고 온 몸에 비를 흠뻑 맞고 와서 잤다. 20일 꿈에 서산옹 형제(서산 김흥락과 그 아우 김승락)를 뵈었는데, 상을 당한 사람의 예가 있었던 듯하니, 괴이한 일이다. 22일 이승원, 안용련이 지나다 들렸다. 23일 조카 규식과 손자 창로가 들어왔는데, 자 루에 가득 담아온 채마밭의 채소들이 하나하나 맛이 일품이다. 따뜻해지는 밝은 봄날이란 바로 이런 것 이로구나. 다만 새로 태어난 종손자가 아직 온전히 회복하지 못하여 안타깝고 불쌍하다. 25일 오후에 조카 규식과 출발하여 통화현으 로 향하였다. 이는 연세 많은 아주머니와 치병(癡病) 을 앓는 상손이 모두 가련하여, 덥고 고단하다고 미 리 물리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강 건너 이준실 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비를 만나 거지서 잤다. 거친 밥과 엉성한 채소는 입에 댈 수가 없어서 겨우 몇 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