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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⑳ 87 1945년 경북 구미 출생으로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30여 년 교사생활과 함께 작가, 시민기자로 지냈다. 지금은 강원도 원주 치악산 밑에서 창작일에 전념하 고 있으며 광복회 고문을 맡고 있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전쟁과 사랑』 · 『허형식 장군』, 산문집 『백범 김구 암살자와 추적자』 · 『항일유적답사기』 · 『누가 이 나라를 지켰 을 까』 · 『영웅 안중근』 · 『대한민국 대통령』 등이 있다. 이밖에도 사진집 『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 · 『개화기와 대한 제국』 · 『일제강점기』 · 『미군정 3년사』 · 『지울 수 없는 이미지』 등과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 『평화와 인권의 대통령, 김대중』 등이 있다. 필자 박 도 고 광주수비대와 교전하여 일본군 40여 명을 사살하 였다. 1908년 봄, 기삼연과 김태원이 순국하고, 김 태원 휘하 오성술· 조경환· 전해산 등 부장들이 각기 의병장을 칭하게 되자 처음에 전해산 의진 중군장이 되었다. 그러나 다시 조경환 휘하에 소속되어 활약 하였는데, 이것이 인연이 되어 피신 중이던 형 원국 도 광주군 선암시장에서 조경환을 상봉한 후, 동생 이 그 휘하에서 활약한다는 소식을 듣고 조경환 의 병부대의 선봉장이 되고, 원범은 도포장이 되었다. 이 해에 원범은 창평 무동촌 · 장성 낭월산 · 영광 토 산 · 함평 오산 등지에서 다시 적과 교전하였다. 특히 이즈음 형 원국은 광주 등지에서 광주 수비대장 요 시다[吉田]를 교전 중 사살하였는데, 이 전투에도 참 여한 것으로 보인다. 1908년 9월, 영광군 황량면에 살던 일본 헌병의 밀정 변 아무개를 부하 20 명과 함께 함평군 식 지면 군평에서 붙잡아 총살하였다. 이 일은 전해산의 명 을 따른 것으로, 당시 호남의진 각 의병장간에는 유 기적으로 작전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1909년 1월, 의병장 조경환이 전사하자 다시 전 해산과 합세하여 ‘대동창의단(大同倡義團)’을 조직하 였다. 이 의진에서 김원범은 전해산을 대장으로 추 대하고 본인은 중군장을 맡았다. 그 후 광주 · 나주 · 담 양· 장성 등지에서 계속 형 원국과 함께 활약하였다. 1909년 2월, 광주 무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체포되어 광주수비대에서 취조를 받다가 1909년 9 월 2일 스스로 혀를 끊어 23세의 젊은 나이로 순국 하였다. 정부에서는 1968년에 형 원국과 똑같이 건 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