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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025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김태원 순국 후, 개별적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가 1908년 9월 광주 선암시장에서 의병장 조경환을 만나, 동생 원범이 조경환 의진에서 활약하고 있음 을 알았다. 이 인연으로 김원국도 조경환 의병부대 의 선봉장이 되었으며, 동생 원범은 도포장에 임명 되어 형제가 함께 한 의병부대에서 활약하였다. 1908년 1월 1일 창평 무동촌에서, 1월 11일에는 장성 낭월산에서, 3월 7일에는 영광 토산에서, 3월 25일에는 광산 어등산에서 일군과 각각 교전하였다. 1909년 3월 초에는 장성군 남일면에서 부하 150명 을 거느리고 일군과 교전하였으며, 3월 18일에는 부 하 80 명과 함께 나주 등지에서, 5월 19일에는 영광 불갑산에서 적과 싸웠다. 1908년 6월, 광주 우암면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던 중, 중과부적으로 적에게 체포당하였다. 목포로 압 송되던 도중 호송하던 일 헌병의 경계가 소홀한 틈 을 타서 결박당한 손을 몰래 풀고 돌을 집어서 헌병 을 타살한 후 함평 먹굴산에 잠시 피신하였다. 1908년 12월, 조경환 의병장이 순국한 뒤에는 그 휘하의 의진을 스스로 통솔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곽진일(郭鎭一)을 선봉장, 오덕신(吳德信)을 중군장, 김재연(金在淵)을 후군장으로 하여 부하 오백 명을 거느리고 광주 · 나주 · 능주 · 동복 · 창평 · 담양 · 장성 · 영 광 등지에서 적을 괴롭혔다. 1909년 12월 5일 영광 불갑산으로 이동 중, 일군 과 교전하다가 체포되니 36세의 한창나이였다. 광주 감옥을 거쳐 대구 감옥으로 이송되어 마침내 한을 머금고 총살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3년에 건 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김원범 의병장 행장] 김원범 의병장은 1886년 1 월 9일 광주군 당부면 북촌리 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거의 하였던 13살 연상의 친형인 김 원국과 함께 1906년 광주 무등 산에서 거의하여 의병 삼백 여 명을 규합하여 선봉장이 되어 일본군과 수차례 교전하여 혁 혁한 전공을 세웠다. 1907년, 기삼연과 김태원이 거의하자 그 의진 휘하에 들어 가 장성 등지에서 활약하였는 데, 특히 의병 3백 여 명을 이끌 광주시 광산구 어등산 입구에 있는 ‘어등산 한말 호남의병 전적지 기념비’(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