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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2025년 8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유족들의 고단했던 삶 청주터미널 부근 거리에서 몇 블록을 헤맨 끝에 다행히 커피숍을 찾았다. 실내는 한적했으나 음악으 로 시끄러웠다. 주인에게 소리를 줄여 달라고 부탁 한 뒤 곧장 대담을 이어갔다. “할아버지 형제분 기록이나 사진 등, 유물은 한 점 도 없습니다. 일제 치하 대역죄인 가족으로 살아남 기에 급급했으니 유족들은 두 분의 행적을 지우기에 바빴을 테지요. 저희 집안에서는 그러지는 않았습니 다만, 다른 어느 집안에서는 남은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 호적과 족보에서조차 이름을 지웠답니다.” ‘오늘의 처지에서 그때를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 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집안에 운동권 학생만 있어 도 쉬쉬 했다는데, 일제 치하 처형된 의병 가족의 삶 이야말로 말이나 글로 다 쓸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 었다. 의병이나 독립투사 유족 가운데는 일본 경찰 과 밀정들의 감시 등살로 도저히 조선 땅에서는 살 수가 없어 단봇짐을 싸들고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 너 중국으로 떠난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한다. “다행히 왜놈들이 기록한 『폭도에 관한 편책』, 『전 남폭도사』, 「고등법원 판결문」 등에 폭도 기록이 남 아 있기에 두 할아버지의 행적을 알게 됐고, 왜놈들 이 만든 『남한폭도 대토벌 기념사진첩』에 나온 할 아버지 사진으로 그분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하지 요.“ 몇 의병 후손들은 그 사진 속의 인물 사진을 확대 하여 당신 조상의 영정을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사 실 일본인들의 기록성은 매우 철저하여 이를 배울 만하다. 오래 전, JAL 여객기가 후지산 기슭에 추락 하는 그 순간에도 일본의 한 승객이 그 기록을 남겨 크게 화제가 된 적도 있었다. 일본 측의 모든 기록과 자료들이 죄다 공개되면 누가 제대로 독립운동을 하 고, 친일을 하였는지, 보다 확실히 드러날 것이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면 될 일도 안 되더군요” - 무슨 업종의 사업을 하십니까? “플라스틱 계열의 조그마한 업체입니다. 나이 탓 대구형무소에 수감 중일 때의 김원국 의병장 김원범 의병장 초상화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