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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군에서 가장 심산벽지인 여항면 산서지역(현재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여섯 분의 애국지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서암(棲巖) 조계승. 선생을 중심으로 뭉친 지재(志齋) 김상집 선생, 인암(仁菴) 전익진 선생, 송암(松岩) 박노일 선생, 남병희 선생, 요산(樂山) 조병대 선생이시다. 조계승 선생은 일찍이 옥천, 청주 등지를 다니며 독립운동가들과 접촉하고 1910년 한일합병에 분한 나머지 2대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에게 항의 서한을 보낼 정도의 애국심이 컸으며 다른 다섯 분들을 모아 독립운동과 관련한 소식을 전하고 민족정신을 길렀다. 김상집, 박노일, 남병희, 조병대와 함께 1919년 3월 19일 구국의 일념으로 함안의거에 참가하였다가 모두 구속되어 옥고를 치르렀고, 전익진 선생은 학교를 세우는데 앞장서고 이교재 선생(상해임시정부 경상남북도 상주대표)을 통하여 가산을 털어 군자금을 내었으며 함안 거사 당일 집안 상사로 참여하지 못하였지만 그해 4월 3일 진동의거에 양촌, 산서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도 하였다. 조계승선생은 3년의 옥고 후에도 아사동맹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고, 김상집 선생은 함양군 수동면으로 피신하여 살면서도 향리에서 여러 활동을 계속 하였으며, 박노일 선생은 함안의거에서 체포되었으나 탈주하였다가 6년 만에 다시 체포되었고, 조병대 선생은 출감 후 동지들과 대구 감옥에서 수감 중인 함안의거 참가자들의 구출을 위해 혈서의 항의문을 쓰기도 하였으며, 남병희 선생은 전익진 선생과 함께 야학운동 등으로 교육활동에서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