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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25년 8월 Column  명사 칼럼 ① 작은 소리 큰 울림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새삼 경건함을 느끼지만, 80주년을 맞이하는 감회는 각별하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국내외적 으로 어려운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지난 80년 동안 온 국민의 노력으로 훨씬 잘 살고 안전한 나라가 된 현실, 그래서  이민을 가고 싶어하는 나라 다섯 가운데 두 번째 나라가 될 정도로 외국인이 선망하는 나라가 된 현실의 바탕에는 나라를 되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싸운 애국자들의 강인한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에 새로운 감동을 느끼기 때문이다. 총칼 대신 문학 · 음악 · 신앙 · 체육·언론 등으로 일제에 맞서싸웠던 애국자들: 해방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다양한 투쟁의 반영이었다 우리 겨레 다양하며 끈질긴 항일독립투쟁 전개 대한민국이 쇠퇴의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노력해야 글ㅣ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일제의 폭압통치 아래 35년 동안 시달리던 우리나라가 1945년 8월 15일에 광복을 맞이하게 된 배경과 관 련해 크게 보아 두 개의 해석이 있다. 하나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이 일제를 패망시킴에 따라 일제의 식민지이던 우리나라가 해방될 수 있었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겨레의 항일독립운동 이 해 방을 가져왔다는 해석이다. 필자는 앞의 해석을 수긍하면서도, 우리 겨레가 수행한 항일독립운동을 절 대로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돌이켜보면, 우리 겨레의 항일독립투쟁은 참으로 끈질겼다. 1919년 3월 1일부터 그해 말까지 계속되 었던 전국적 수준에서의 민족적 저항은 훗날 인도의 총리가 된 자와할랄 네루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길게 소 개할 정도였다. 해외로, 특히 중국으로 망명한 애국지사들의 무장투쟁, 그리고 3 · 1운동을 계기로 그해 4월 11 일에 중국 상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세워 일관되게 싸운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서 시작해 마지막 주석 김구를 비롯한 지도자들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1929년 4월 29일에 상해에서 폭탄을 던져 상해를 침략 한 일본군 수뇌부를 처단한 윤봉길 의사는 물론이고, 윤 의사를 전후해 작탄(炸彈)투쟁을 이어갔던 수많 은 순 국선열의 희생이 민족해방에 연결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