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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2023년 3월 Column   편집위원 컬럼 작은 소리 큰 울림 ① 3 · 1 독립선언서의 비밀 “대추 한 알도 저절로 붉어질 리가 없어” 대한민국은 우연 · 연합국 승리로 주어진 나라가  아니라, 독립운동을 통해 건립된 나라를 증명 글ㅣ김중위(월간 『순국』 편집 고문) 독립협회의 청년지도자로 입헌군주제를 목표로 맹렬한 활동을 펼친 이승만이 반역음모로 체포 되어 한성감옥에 있으면서 『독립정신』이라는 제목의 책을 저술하였다. 옥중기라고 해도 좋을 그  저술은 간수들의 눈을 피해 집필된 것이다. 감옥생활 7년째에 접어 든 해였다.  무력독립투쟁을 줄기차게 주장하면서 이를 실천에 옮겼던 애국지사 박용만이 1905년 이 글의  원본을 몰래 미국으로 가져와 1909년 1월에서야 출판하였다. 그 『독립정신』 초판본 서문에서 이 승만은 이렇게 쓰고 있다. “지금 일본인들이 한국에 멸종(滅種)주의를 쓰며 난리인즉· · · 한국인에 게 이것을 알려주려면 독립정신을 권하는 것보다 더 긴한 글이 없다· · · .” 이에 이어 박용만은 이런  후서(後書)를 썼다. “· · · 비록 나라는 망하였어도 그 나라 백성의 독립정신만 완전하면 결코 아주  망하지 않을 지라. · · · 이제 우리 4천년 역사에 처음으로 부르는 소리요 또한 처음으로 듣는  소리 인지라· · · ” 이로부터 10년 뒤 우리는 독립선언서를 만난다. 그사이 숱한 의병활동이 일어났고 순국열사와  의사들이 줄을 이었다. 소위 한일합방도 일본 측의 계략대로 진행되었다. 1919년 정월이 되자 ‘한 일합방’에 울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일본내 한국 유학생들이 작성한 2 · 8독립선언서 초안이 국 내로 유입되었다. 오랫동안 독립운동의 기회를 탐색하던 애국지사들이 이 소식에 접하자 그들의  마음속에 불같은 열기가 끓어올랐다. 그때 마침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된 고종이 유폐생활 중에  아무 이유 없이 별안간 승하하였다. 독립선언의 기회는 바로 이때다 하고 손병희를 중심으로 한  민족대표들이 모여 3 · 1운동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자신은 학자로 일생을 살고 싶을 뿐이기에 독립운동의 전면에는 절대 나서지 않겠다는 육당 최 남선이 동경의 2 · 8선언을 보자 선뜻 자신이 선언서를 쓰겠다고 자원하고 나섰다. 만해 한용운도  독립선언문의 작성은 자신의 몫이라고 나섰으나 ,결국은 육당이 쓰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