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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기념비. 임병찬(林炳瓚) 선생은 1851년 2월 전라북도 옥구군 서면에서 출생, 호는 돈헌, 본관은 평택이다. 한말 관료로서 1889년(고종26년)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과 낙안군수(樂安郡守)겸 순천진관 병마동첨절제사(順天鎮管兵馬同僉節制使)를 역임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전국의 선비들은 비분강개하였고 선생 또한 최익현과 사제의 연을 맺고 의병을 모집하여 구국의 길에 동참하였다. 1906년 의병장(義兵將) 최익현(崔益鉉)과 더불어 태인(泰仁, 현재 칠보)의 무성서원에서 의병을 일으켜 초모(招募), 군량(軍糧) 및 병사훈련 등의 책임을 맡아 홍주(洪州) 의병장 민종식(閔宗植)과함께 태인, 정읍, 순창, 곡성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동년 6월 순창에서 일본군에 체포 되어 대마도로 유배되었다. 1912년 9월 고종황제가 내린 밀조(密詔)에 따라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를 조직하였으며, 그 후 총사령이 되어 일제의 내각총리대신 총독 이하 모든 관헌에게 「국권반환요구서(國權返還要求書)」를 보내 일제합방의 부당성을 천명하고 국권회복의 의기를 일으켜 일제를 축출하려는 항일 의병 운동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1914년 5월 일본경찰에 의해 동 계획이 사전에 발각·체포되어 거문도로 유배되고 1916년 5월 23일(음력) 유배지에서 단식 끝에 순국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