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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독립운동가 열전 • 유관순 스승, 최초의 미국 문학사 “김란사” 77 업한 뒤 미국으로 유 학을 떠나면서 여권 을 만드는 과정에서 남편 성을 따서 하 란사(河蘭史)라는 이 름으로 불렸다. 당시 미국 유학길에 오른 여성들의 성씨는 차 미리사(본명 김미리 사), 임인재(본명 차 인재) 지사처럼 기혼 자의 경우 남편 성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남편인 하상기 선생은 여성도 교육을 받아야한다 는 소신을 가졌던 분으로 김란사 지사의 향학열에 용 기를 심어주었다. 이러한 남편의 지지 덕택에 김란사 지사는 이화학당을 거쳐 일본 도쿄의 게이오대학[慶 應義塾]에서 1년간 유학한 뒤, 다시 미국의 오하이오 주 웨슬리언대학에 입학했다. 유학길에는 남편이 함 께 동행할 정도로 여성의 신교육에 대해 적극적인 자 세를 보였다. 웨슬리언대학에서 공부할 때는 미주지 역 항일무장투쟁의 선구자로 알려진 박용만(대통령 장, 1995), 의친왕 이강 등 다수의 인사와 교류하였 다. 1906년, 문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한 이래 이 화학당 교사로 재직하면서 여성교육자로서 학생들 의 민족의식을 드높이는 활동을 펼쳤다. 1907년부터 이화학당의 비밀결사 학생조직인 이문회(以文會)를 통해 민족의 현실과 세계정세를 학생들에게 가르쳤 으며 유관순 열사는 김란사 지사의 아끼는 제자였다. 오랫동안 남편 하상기 성을 따라 ‘하란사’로 알려져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쯤, 글쓴이는 자신을 김 란사 지사의 조카라고 밝힌 김용택(김란사기념사업 회장)이라는 분을 만난 적이 있다. 김란사 지사에게 는 김동연(金東淵)이라는 남동생이 있었는데 그의 장 남 김정국(金正國)의 5남이 김용택 회장이다. 그 무렵 글쓴이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시와 공훈으로 기 록한 『서간도에 들꽃 피다』(2권)을 막 펴냈을 때로 그 책에는 ‘하란사’ 라는 이름을 썼다. “할머니(김란사 지사)는 남편 하상기가 인천 감옥 소의 별감(別監)일 때 전처 조씨가 1남 3녀를 둔채 사 망하자 하상기의 후처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할머 니가 후처라고 해서 무시당하거나 업신여기는 일은 없었습니다. 우리 외가에서는 김란사 할머니에 대한 대접이 극진했습니다. 할머니는 엄하시면서도 집안 을 화목하고 법도 있게 잘 다스린 분입니다”라고 손 자인 김용택 회장은 말했다. 그리고 할머니(김란사 지사)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을 지적해주었다. “할머니의 출생 연도는 미국 출입국심사 기록에 김란사 지사 (모바일 아티스트 장홍탁 그림, 서울교육박물관 제공) 일본 게이오대 한국인학생 친목회 사진. 붉은 동그라미 속의 흰옷을 입은 이가 김란사 지사(김용택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