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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⑲ 77 느껴지는 곳이지요.” 오랜 세월로 이제는 지난날의 건물들은 자취도 없 고, 다만 그 자리에‘고택 터’, ‘흥악재(강당) 터’등 표 석과 ‘대한독립의군원수부사령총장 둔헌임선생지 묘(大韓獨立義軍元帥部司令總將遯軒林先生之墓)’라 는 비석만 서 있었다. 김 사무국장은 오랜만에 이곳 을 찾은 듯, 분명 이곳에 임병찬 장군 묘지가 있었는데 없어졌다고 하면서 주위를 여러 번 둘러보았으나 끝내 찾 지를 못하고는 이 마을에 사는 송희정 씨 댁으로 찾아갔다. 이 마을 태생인 송희정 씨는 임병찬 장군의 묘를 후손들이 명당을 찾아 이 장한다며 몇 해 전 회문산 정상 부근 으로 옮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요즘은 산이 워낙 우거져 찻길도 없을 뿐더러 도보 길도 산림이 우거져 험하다고 하 여 더 이상 답사는 포기할 수밖에 없 었다. 동행 택시기사 김완규 씨도 합석하 였는데, 세 사람은 서로 잘 아는 사이 로 주로 나에게 정읍 소개를 하였다. 정읍은 널리 알려진 바, 동학농민혁명 의 발상지로 혁명가를 많이 배출한 고 장이다. 특히 천도교 등 고유 신앙도 성행하였다. 그런데 김완규 씨는 택시 기사지만 한학자로 정읍 시내에다 한 문학원도 차려서 운영한단다. 온 나라 가 영어 열풍인데 한문학원으로 밥벌 이가 되겠는가. 나는 그가 때를 잘못 맞췄다는 측은 한 생각이 들었다. 김 사무국장은 김완규 씨를 소개 한 바, 보천교 차경석 교주 아들에게 한문을 배웠다 고 한다. 그러자, 김완규 씨는‘보천교(普天敎)’의 총본 산도 정읍시 입안면 대흥리에 있다는 얘기를 하였다. ‘보천교’, 내 어린 시절 얼마나 많이 들었던 말인 가. 나는 그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며 보천교에 대한 1906년 최익현과 임병찬이 의병을 일으킨 전북 태인의 무성서원 임병찬 의병장 무덤 앞의 묘지석과 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