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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2025년 7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내 받지 않았다(『정읍의병사』, 164~165쪽). 이 일이 있은 이후, 임병찬 장군의 임씨 집 안과 김개남 장군의 김씨 집안은 대를 이은 원수지간으로, 지금까지도 화해가 되지 않은 듯 하다고 김 사무국장은 전했다. 그러면서 임병찬 장군이 포상이 탐나서 김개남 장군을 밀고한 게 아니라, 아마도 서로의 처지와 나 라를 구하고자 하는 방법이 달랐기에 빚어 진 비극이라고 풀이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나라가 기울어져 국론이 둘로 나 뉘면, 어느 한 편에 서야 하는 슬픈 백성들의 비애’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 분들만, 이 시대만 그랬겠는가. 내가 아는 어떤 이는 6·25전쟁 때 인민군으로, 국군으로, 다시 인 민군 포로로, 거제포로수용소에 갔다 온 이 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산하에는 동족 상잔의 슬픈 이야기가 유난히 많다. 이런저런 얘기를 들으면서 정읍 시가지를 떠나 40여 분을 달린 끝에 옥정호(玉井湖)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산마루를 오르자 한말 호 남의병 유적지 조감도가 나오고, 곧장 임병 찬 창의유적지가 펼쳐졌다. 김 사무국장은 일대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이곳 창의유적지는 구한말 임병찬 장군이  호남 의병을 훈련하던 곳입니다. 낙안군수를  사임한 임병찬 장군은 이곳에 사당을 지어  공자를 모시며 후진을 양성하면서, 한편으로  일제 강점에 대비하여 의병을 훈련하였습니 다. 이 일대 모두가 의병들의 의로운 숨결이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에 있는 호남의병 유적지. 멀리 회문산 정상이 보 인다.   정읍시 종성리에 있는 호남의병 유적지 조감도   임병찬 의병장 창의 기념 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