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page
76 2025년 6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의 심원사에서 김동신(金東臣) 의진과 합세하여 의병 삼백여 명을 거느리고 산에서 내려오는 왜병과 접전 하여 적 수십 명을 격살시켰다. 1908년 1월 2일, 기삼연 의병장이 순창에서 적에 게 체포당하여 광주의 서천 백사장에서 순국하자 의 진은 다시 분진(分陣)하게 되었다. 이에 이석용은 다 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남원으로 진출하여 적의 장교 3명과 졸병 다수를 격살하였다. 이어서 '왜죄 10조(倭罪十條)'를 크게 써서 거리마다 붙여 놓고 황 제께 상소하여 기왕의 모든 불평등조약을 폐기할 것 과 다시 매국노 을사오적의 목을 벨 것을 간청하였 다. 그 뒤 남원· 전주 등지를 중심으로 왜적과 수차례 접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아군의 피해 또한 적지 않았다. 1908년 9월 임실 전투에서 적에게 크게 패한 뒤 의진을 해산하고 잠행 유랑하다가, 1913년 겨울 임 실에서 한인 형사 김 아무개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이른바 살인· 방화· 강도 등의 죄목으 로 기소되어 1914년 1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공 판을 받았다. 다음은 재판장과 이석용 의병장간의 1 문 1답의 대략이다. (문) 무슨 목적으로 폭도가 되었는가? (답) 너희 일인(日人)을 배척하기 위해서다. (문) 통솔한 부하가 삼백 명이라고 하는데 정 말인 가? (답) 그렇다. (문) 조선이 일본과 합병 이래 천황폐하의 은덕이 망극하여 일반 신민이 환희하니 너도 충실한 신민 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가? (답) (크게 웃으며) 차라리 대한의 개와 닭이 될지 언정 너희 나라 신민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문) 의병이라고 자칭하면서 인명을 살해하고 마 을에 불을 지르고 공금을 강탈했으니 이 무슨 불 법 행동이냐? (답) 대한(大韓)을 배반하고, 부일(附日 일본에 아부 함)하는 자는 죽일 것이요., 공금은 대한의 국세인 즉 국왕이 잃어버린 돈을 신하가 찾아 쓰고, 아비 가 잃어버린 돈을 자식이 찾아 쓰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데 무슨 불법이란 말인가? 이석용 의병장 묘(전북 임실군 성수면 삼봉리) 소충사 내 이석용 의병장 영정과 위패, 깃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