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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 스크랩 • 구국 의병항쟁 열전 - 거룩한 구국항쟁의 현장을 가다 ⑲ 75 정읍문화원 문을 두드리자 김희선 사무국장이 반갑 게 맞았다. 인사를 나누자 김 사무국장은 자기 고장 정읍을 소개했다. 정읍은 동학농민운동의 발상지요, 의(義)의 고장 으로 기미만세 때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박 준승 선생, 독립투사 백정기 의사 등 국가보훈처에 서 서훈받은 분만 33분이나 된다고 고장을 자랑하 였다. 나는 백정기 의사 존함이 귀에 익었다. 기억을 더듬자 3년 전, 우당기념관 이종찬 전 국정원장(현 광복회장)과 함께 『사진으로 엮은 한국독립운동사』 를 만들 때 수록한 인물이었다. 백정기 의사는 아나 키스트로 1932년 ‘상하이사변(上海事變)’ 직후 흑색 공포단을 조직하여 특수공작을 추진하던 중, 체포돼 옥중에서 순국했던 분이다. 김 사무국장은 임병찬 의병장 무덤과 의병 훈련 터가 있다는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는 거리도 멀고 고도가 높은 곳으로 대중교통은 닿지 않는 곳이라 하여 택시를 부탁드렸다. 김 사무국장은 전화로 곧 안면이 있는 택시기사를 불렀다. 김 사무국장은 기사 옆 자리에 앉고 나는 뒷자리 에 타고 가는데 차 안에서 임병찬 장군에 대한 일화 를 들려주었다. 전봉준, 손화중과 함께 동학농민혁 명의 걸출한 3대 인물인 김개남 장군과 임병찬 장군 사이에 얽힌 비사(秘史)였다. 이야기인 즉, 임병찬 장 군이 김개남 장군을 관에다 밀고하여 체포케 했다는 것이다. 순간 나는 미처 몰랐던 일로 큰 충격을 받았 다. 내가 본 국가보훈처 자료에는 그런 이야기가 전 혀 없었다. 마침 김 국장이 자료로 준 『정읍의병사』 에 실린‘임병찬 장군’편에 자세히 담겨 있다기에 그 부분을 읽어 보았다. 이 해(1894년) 겨울, 동학농민혁명의 주역 인물이 었던 김개남이 (임병찬이 살고 있던 종성리) 이웃 너 듸(四升) 마을 서영기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임병 찬은 김종섭을 시켜 김개남에게 더욱 안전한 종성리 로 옮기도록 설득하여 같은 마을 송두용 집으로 유 인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전라관찰사 이도재에 고발 잡혀갔다. 이듬해인 1895년 정월, 임병찬은 김 개남을 체포한 공으로 임실 군수를 제수했으나 나아 가지 않았다. 또 관찰사가 쌀 20석을 보내왔으나 끝 임병찬 의병장 김개남 장군(1853~1894)   임병찬이 의병을 훈련시킨 정읍 산내면 '호남의병 유적지'를 정읍 문화원 김희선 사무국장이 설명하고 있다(이하 현장 사진은 필자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