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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2025년 6월 순국 Focus 역사의 시선으로 순국스크랩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부자의 두 터운 정을 회고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일본 놈들이 우리 집 을 '폭도의 집'이라고 불태워서 이곳저곳을 옮겨 다 니며 근근이 살았지요. 창씨개명이 싫어 호적도 하 지 않아 학교도 못 다니고, 한문도 소학만 겨우 읽은 반거충이지요.. 한글도 한문도 모두 익 지 못해 취직도 못 했소.” 이 회장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였다. 면서기가 그렇게 부러웠지만 배운 게 없어 못 했다고 하면서 ‘폭도 수괴’ 후손 으로 살아온 이야기를 어찌 이 자리에 서 다 하겠느냐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 슬하에 아들 딸 7남매를 뒀는데, 다행히 자식들이 잘 풀렸으니, 그게 모 두 할아버지 음덕이 아니겠느냐고, 지 난날 고생 이야기 대신 아들 딸, 손자 손 녀 자랑을 더 많이 했다. “큰 아들도 잘 살고 둘째도 그만그만 해요. 손자는 박사라오.” 그러고는 주머니에서 비닐봉투를 꺼 냈다. 거기에는 할아버지, 아버지 사진 과 28 의사의 명단을 메모가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명근 회장의 모습을 부지 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나는 이명근 성수면 노인회장의 손을 꼭 잡아드리고 대기 중인 택시에 올랐 다. 이 회장은 굳이 주차장까지 나오셔 서 택시 앞문으로 기사에게 봉투를 건넸다. “택시비는 내가 내야지.” 택시는 성수면 노인회관을 벗어나 임실로 달렸다. 묵묵히 지켜보던 기사가 한 말씀했다. “노인이 아주 깨끗하게 늙었구먼요. 의병장 후손 은 어딘가 다르게 보이네요.” 이석용 의병장 생가와 고덕산(가운데) 이석용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