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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최규하, 국민과의 약속을 천금같이 여기는 공직자의 자세를 선도하다. 최규하 대통령은 1975년 12월 김종필 총리에 이어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고, 이듬해 3월 국회의 동의를 받아 국무총리가 됐다. 유신체제의 4공화국 시절인 1976년 국무총리에 임명돼 1979년까지 4년간 국무총리직을 수행했다. 국무총리 시절 그는 부정부패 척결에 힘을 썼다. 일례로 취임 후 언론 인터뷰에서 "부인 조심, 비서 조심, 자녀 조심"이라는 말로 공직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주말만 되면 수행 비서도 없이 민정시찰을 다니는 확인행정을 하였고, 심지어 사북탄광의 석탄채굴 현장에 방문하여 지하 450미터 지하 막장에 들어가 광부들의 노고를 치하하였다. 최규하 대통령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랐고, 그해 12월 6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는 긴급조치 9호를 해제하고 김대중을 비롯한 시국 관련자 687명을 사면·복권하는 등 잇따른 전향적 조치를 통해 정치적 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혼돈의 회오리가 계속되면서, 결국 최규하 대통령은 신군부의 위세에 눌려 1980년 8월 16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직을 사임하였다. 최규하 대통령은 모범적인 공직자였지 위기시의 리더는 아니었으며 '성공한 대통령'도 아니라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그가 공직생활 중 보여줬던 법과 절차를 중시하는 자세, 공평무사한 인사, 청렴결백함, 끈질긴 외교협상력 등은 대한민국 대통령뿐만 아니라 모든 공직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