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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2025년 8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8월의 독립운동 2판 2면에 마라톤 시상식 사진을 다시 게재했는데, 이때 손기정 선수 상의 유니폼의 일장기가 완전히 지워진 채 게재되었다. 8월 13일자 사진에서는 일장 기 표식이 흐릿하게 되어 있었던 것과 달리, 이때의 사진은 일장기 부분이 시커멓게 인쇄되어 완전히 삭 제된 사진이었다. 석간 제1판에는 일장기 표식을 그 대로 실었다가, 제2판에서 일장기가 말소된 사진을 실었다. 일장기 말소 사진 옆에는 검열에 걸려 기사 가 삭제되어 빈 면으로 인쇄된 부분이 있었기 때문 에 사진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에 검열관이 일장기 말소를 바로 파악했다. 일제 수사기록과 증언에 따르면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는 처음에는 운동부장 이길용(李吉用)이 『오사 카 아사히 신문』 남선판(南鮮版)과 서북판에 실린 사 진을 가지고, 화가 이상범(李象範)에게 일장기를 흐 리게 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되었다. 이에 이상범 이 원 사진에 흰색 물감을 써서 일장기를 흐리게 했 다. 그 후 사회부 기자 장용서(張龍瑞)가 사진과장 신 낙균(申樂均) 및 사진부 기자 서영호(徐永浩)에게 보 다 확실하게 일장기를 말소하자고 제안했고, 신낙균 의 지시를 받은 서영호가 청산가리를 사용해서 완전 히 일장기 부분을 지워서 인쇄를 넘겼다. 일제의 언론 탄압과 언론 장악 조선총독부는 일장기 말소를 인지하자, 당일 『동 아일보』의 발매 및 배포를 금지시켰다. 그리고 이길 용과 이상범을 비롯한 관련자 다수를 연행해 취조했 다. 여기에는 직접 관련되지 않은 사회부장 현진건 (玄鎭健), 『신동아』 주간 겸 잡지부 주임 최승만(崔承 萬), 『신가정』 주간 변영로(卞榮魯) 등도 포함되어 있 었다. 연행된 사람들은 모진 고문을 당했고, 사장 송 진우와 주필 김준연(金俊淵) 등 『동아일보』 경영 · 편 집진과의 연관 여부를 집중 추궁당했다. 경무국은 8월 27일 조사결과를 발표했고, 동아일 보에 대한 무기정간 조치를 취했다. 동아일보는 이 미 인쇄된 8월 28일자를 마지막으로 8월 29일부터 무기 정간에 들어갔다. 정간은 무려 10개월이나 계 속되었고 1937년 6월 2일이 되어서야 해제되었다. 『동아일보』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조선중앙 일보』에 대한 수사도 9월 1일부터 시작되어, 4명이 연행되었다. 이에 『조선중앙일보』는 9월 4일자 석간 을 마지막으로 자진 휴간(休刊)하였다. 『동아일보』 의 무기정간 처분을 보면서, 동일한 처분을 예상하 고 자진 휴간에 들어간 것이다. 이후 내분 속에 복간 되지 못하고 폐간되고 말았다. 『동아일보』 경영진은 복간(復刊)을 위해 조선총독 부와 교섭에 나섰다. 그렇지만 조선 총독으로 새로 부임한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강경한 정책을 추진 했다. 총독부는 일장기 말소사건을 계기로 강압적 언론정책을 본격화했다. 총독부는 동아일보의 ‘인사 개혁’과 ‘지면의 철저한 개혁’을 요구했다. 인사개혁 의 주요 요지는 사장 송진우의 사임을 비롯하여, 주 요 간부 및 사원들의 해고와 사내 다른 직무종사 금 지, 사장 · 부사장 · 주필 · 편집국장 임용시 당국의 사전 승인, 당국이 지정한 항목에 대한 지면쇄신 서약 등 이었다. 총독부는 일장기 말소사건을 계기로 『동아일보』 를 총독부 통제 하의 언론기관으로 전면 개편하려 고 했다. 그를 위해 ‘인사개혁’이란 명목으로 일장 기 말소사건에 관련된 기자들뿐만 아니라, 경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