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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25년 8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8월의 독립운동 론의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신문들의 필봉(筆鋒)도 조금씩 무디어졌다. 이렇게 직접적인 비판과 언급은 자제되었으나, 여전히 일제와 조선총독부는 비판의 대상이었다. 신문사들은 논설과 각종 기사, 그리고 여러 가지 행사들을 통해 여전히 민족의식을 고취하 려고 했다. 총독부도 이런 신문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으며, 신문들의 편집 방침과 내용을 바꾸기 위 해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압박도 가했지만, 신문사 들은 지속적으로 저항하며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 고자 했다. 일본의 중국대륙 침략은 1930년대 중반 중일전쟁 으로 확전되었고, 군부의 요구에 의해 일제의 군국 주의화가 가속화되며 총독부의 언론통제도 더욱 까 다로워지고 엄격해지기 시작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1936년 총독부가 제시한 「언문신문지면 개 선사항」 6개 조항이다. 이는 처음에는 협조 요청이 었으나, 점차 강제성을 띤 규정으로 변화해 갔다. 일장기 말소사건의 전개과정 1936년 8월 1일부터 독일 베를린에서 제11회 하 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동아일보』와 『조선중앙일 보』는 한국 민중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방법 의 하나로 올림픽 경기에 주목했다. 비록 일본 선수 단의 일원이지만 한국인 선수가 7명이나 선발되었 고, 그 중에서 마라톤 세계기록 보유자인 손기정의 메달 획득이 유력하게 예측되었기 때문이다. 8월 9일 마라톤대회가 열렸고, 손기정은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기록으로 우승했다. 남승룡 (南昇龍)도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렇지만 시상식 사 진에서 보이듯이, 손기정과 남승룡은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손기정은 월계 수 묘목을 가슴에 끌어안아 일장기를 가리려 했다. 『동아일보』 와 『조선중앙일보』는 호외와 특집, 논 설로써 손기정과 남승룡의 승리를 연일 다루었다. 이들 신문은 손기정, 남승룡의 활약을 무기력에 빠 진 한국 민중에게 민족적 자긍심과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최대의 쾌거로 평가했다. 『동아일보』와 『조 선중앙일보』는 거의 매일 관련 논설을 실었다. 특집기사도 며칠간 계속되었다. 『동아일보』는 「조 선의 아들 손기정, 세계의 영웅이 되기까지」 (1)~(3) (1936.8.11~13), 「세계 제패의 개선가」(1936.8.11), 「어서 오라 너 조선의 두 아들들이여」(1936.8.12), 「그들은 세계에 알렸다. 영예의 남승룡군」 (1)~(2) (1936.8.14~18), 「우리 패업을 완성한 베를린 올 림픽 총결산」(1936.8.18), 「젊은 조선의 세계 제패, 마라톤 손 · 남 양군에 쏠리는 감격」(1936.8.25) 등 을 게재했다. 『조선중앙일보』도 특집기사를 게재했 다. 「십여 만 명 관중 환호리 손군 일착의 극적장면」 (1936.8.11), 「금번 올림픽에 일등한 손기정군 미 담」(1936.8.12), 「베를린-조선, 마라톤왕 우리들의 손군이 세계의 영관(榮冠)을 얻기까지」(1936.8.13) 등을 게재했다. 심훈(沈熏)의 축시 「오오, 조선의 남 아여」도 게재했다(1936.8.11). 동아일보는 각종 기념사업도 기획했다. 손기정 우 승을 기념하는 체육관을 건립하자는 캠페인을 적극 전개했다. 또한 ‘스포츠 조선 세계제패가(歌) 공모’ 를 8월 20일부터 시작했다. 8월 26일부터는 베를린 올림픽 영화를 서울 부민관에서 무료 상영했다. 많 은 인파가 몰렸다. 이에 대해 총독부는 한국 언론들이 손기정의 승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