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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독립운동 • 일장기 말소사건 67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것이 목 적이었다. 그를 위해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개인과 단체에 만 신문발행을 허가했고, 『동 아일보』는 이런 배경 속에 창 간되었다. 『동아일보』는 한국 민중과 민족운동의 대변지(代辯紙)임 을 자부하면서 신문을 발행했 다. 한편 같은 시기에 창간된 『시대일보』는 경영난으로 인 해 불안정한 운영이 지속되었 다. 그러다 1933년 여운형이 사장으로 취임하여 『조선중앙 일보』로 제호를 바꾸고 재창간하면서 경영이 안정 되기 시작했다. 이 신문들은 총독부의 의도와 다르게 운영되었지 만, 그렇다고 ‘문화정치’를 표방한 이상 이미 허가된 신문들을 폐간시키는 것은 쉽지 않았다. 1920~30 년대 전반 일본은 소위 ‘다이쇼 [大正] 데모크라시’의 영향으로‘정당정치’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이런 자 유주의적 성향의 정치 상황은 식민지에도 영향을 끼 쳤고 총독부도 언론을 적극적으로 탄압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때문에 총독부는 검열 기준을 제시하여 신문이 제 작되어 배포되기 이전에 기사 내용을 미리 통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검열 기준은 매우 엄격했다. 한국 독립과 관련한 긍정적인 내용이거나 해외 독립단체 의 활동에 관한 내용은 금지였다. 이런 엄격한 기준 하에 기사들은 수정, 삭제되었고 사안이 심각하다고 생각되면 정간 처분까지 가는 강경한 처분을 내 리며 신문사들을 압박했다. 1920년대만 해도 기사 압수와 삭제 처분이 각 신 문사별로 수백여 건 발생했다. 발행정지도 여러 번 단행되었다. 이는 총독부의 언론통제가 가혹했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신문 기자와 편집진들의 기사를 통 한 저항이 지속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문이 정간 처분을 받는다면, 상당수의 기자들과 편집진은 자신들의 주장을 대중에게 전할 매체를 잃게 되고, 신문사 운영 또한 어려워져 신문 기자들의 생계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따라서 신문 들은 정간에 이를 정도의 논조는 피하지만 총독부 정책을 비판하고 한국 민중을 대변하는 글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1931년 일제의 중국 동북지방 침략사태 인 ‘만주사변’ 도발 이후 정치적 억압이 강화되고 언 한글신문 탄압 기사 모음집 『언문신문 차압기사 집록』(조선총독부 경무국 도 서과, 1932.6) 한글신문 탄압 방침을 수록한 「언문신 문의 현황과 당국의 취체방침」, 『경무휘 보』 362호(19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