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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2025년 6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여성독립운동가 열전 잿빛 비를 뿌리던 하늘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푸르렀다. 가슴 시리도 록 푸르른 하늘 아래,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 집터를 걸으며 나 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이인순 지사의 삶의 흔적을 찾아 블라디보스톡 신한촌(新韓村)을 찾은 것은 2018년 10월 24일 저녁 5시 무렵이었다. 아무르바다의 물빛이 회색빛을 띠던 그 시각 신한촌도 서서히 해가 지 고 있었다. 신한촌은 1911년 무렵부터 형성된 곳으로 많을 때는 1만 명 이상의 한인들이 살던 곳이다. 이곳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 을 했으나, 소련 정부에 의해 1937년 한인 강제 이주가 시작된 이후 폐 허로 변했다. 그 뒤 아파트촌이 들어서서 현재는 당시 한인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게 변모해 버렸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파트촌 한구석에 ‘서울스카야 2A’라는 번지 를 적은 문패가 남아있어 이곳이 과거 한인들의 집단거주지였음을 알려 주고 있다. ‘서울스카야 2A’라는 문패가 달린 이 집은 아무르바다가 내 려다보이는 아무르스카야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이 집으로부터 하바롭 스카야 거리 끝의 ‘연해주 신한촌 기념탑’이 설치된 곳까지가 신한촌 지 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1919년 박은식 선생이 3 · 1만세운동 때 함께 한 곳이기도 하다. 1909년 블라디보스톡 지도에 표기된 ‘한국거리 (까레이쓰까야 울리짜)’를 통해 현재 지역이 신한촌이라는 것을 추정하 블라디보스톡 한인촌 여장부 “이인순” 이동휘의 장녀, 1919년 11월 블라디보스톡에서 병사 1920년 1월 상해 대한애국부인회, 추도식 개최 러시아 땅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숨 진 이인순 지사에 대해 중국 상해에 서 추도식을 열 정도로 이인순 지사 는 동포 사회에서 이름난 여성독립 운동가였다. 그의 발자취를 찾아 몇 해 전 중국 연길의 국자가(局子街) 소영자(小營子)에 갔을 때 느꼈던 그 감회는 블라디보스톡 한인촌으로 이 어졌다. 사람은 갔어도 그가 밟았던 땅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법, 이인 순 지사를 포함한 블라디보스톡 한 인촌에서 독립의 불씨를 활활 지피 던 선열들의 추모비 앞에서 국화 한 다발을 바치며 나는 다짐했다. ‘선열 들의 굽힐 줄 모르던 삶의 용기와 광 복에의 뜨거운 열정을 결코 잊지 않 겠노라’ 고 말이다. 부친 이동휘, 남편 정창빈, 여동생 이의순도 독립운동 온 가족이 만주·연해주 독립운동 앞장서다 희생 글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