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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이길용 선생 65 아일보(1936년 8월 25일자 2면)가 전국에 배 포되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조선총독부 종로경찰서에 연행되어 1개월 여의 엄혹한 조사를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일제의 강요 로 1936년 9월 25일 동아일보사에서 해직되 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 미츠하시 코이치로[三 橋孝一郞]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은 다음과 같 은 담화문을 발표하였다. “『동아일보』는 금회 발행정지 처분을 당 하였다. 전일 백림(베를린 - 인용자)에서 개 회된 세계 올림픽 대회의 마라톤 경기에 조 선 출신의 손기정 군이 우승의 월계관을 획 득한 것은 일본 전체의 명예로 일본 내지(內 地)와 조선이 함께 축하할 것이며 또 일본 내 지와 조선 융화의 자료로 할 것이지 이를 역 이용하여 조금이라도 민족적 대립의 공기를 유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 데 사실은 신문지 등의 기사는 자칫하면 대 립적 감정을 자극함과 같은 필치를 취하는 것이 있음은 일반으로 유감하던 바이다. 『동아일보』는 종래 누차 당국의 주의가 있 었음에도 불구하고 8월 25일 지상에 손기정 군의 사진을 게재하였는데 그 사진에 명료하 게 나타나야 할 일장기의 마크가 고의로 말 소한 형적(形跡)이 있었음으로 즉시 차압 처 분에 부치고 그 실정을 조사하였는데, 위는 8 월 23일자 『오사카 아사히신문』에 게재된 손 기정 군의 사진을 전재하면서 일장기가 신문 지상에 나타남을 기피하여 고의로 기술을 사 용하여 이를 말소한 것이 판명되었음으로 마 침내 그 신문지에 대하여 발행정치 처분을 내리게 되었다.” 경찰은 동아일보를 수사하면서 다른 신문 도 조사하였다. 시상식에 올라선 손기정과 남승룡을 실은 사진은 동아일보 외에 『조선 중앙일보』(사장 여운형) 뿐이었다. 동아일보 조사와 정간 처분이 끝난 후인 9월 1일 조선 중앙일보 기자 유해붕이 경찰에 소환되었다. 유해붕 자신도 곧 끌려갈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경찰의 취조가 진행되는 동안 조선중 앙일보도 자체 조사를 벌여서 8월 13일자 사 진의 일장기를 지운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조선중앙일보는 1936년 9월 5일자 석간에서 당국의 처분이 내리기 전에 자진 휴간을 선 언하였다. 동아일보처럼 무기 정간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 반성하는 태도를 취함으로써 피 해를 최소로 줄이려는 전략이었다. 1945년 8월 광복 후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 여하여 조직부 차장을 맡았다. 또 1945년 동 아일보 복간 이후 사업부 차장으로 복귀하였 다. 1950년 6·25전쟁 중 납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 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