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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2025년 7월 순국 PEOPLE 아름다운 사람들 7월의 독립운동 최선을 다하면 강토(疆 土)의 회복과 광복은 당 연히 도래한다는 신념 을 가지고 있었다. 광복 회의 투쟁강령은 ‘무력 준비 · 무관양성 · 군인양 성 · 무기구입 · 행형부(行 刑部) 설치 · 무력전’이 었다. 투쟁강령은 독립 전쟁을 벌이기 위한 방략이었고, 대부분이 무력준비 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즉 독립군을 양성하고 자금을 조달해 군비를 갖춘 뒤 일제와 전쟁을 벌인 다는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한인(韓人)을 만주로 이 주시키고 자금을 조달해 전쟁을 수행한다는 수립했 다. 따라서 광복회는 표면적으로는 ‘회’라는 온건한 명칭을 사용했지만, 실제 편제에서는 ‘사령관 · 사령 부 · 사령관 · 지휘장’등 군대식 조직체계를 갖추었다. 광복회 조직 본부 사령관: 박상진(朴尙鎭) 지휘장: 우재룡(禹在龍)ㆍ권영만(權寧萬) 재무부장: 최준(崔俊) 사업총괄: 이복우(李福雨) 각도 지부 경기도지부장: 김선호(金善浩) 황해도지부장: 이해량(李海量) 강원도지부장: 김동호(金東浩) 평안도지부장: 조현균(趙賢均) 함경도지부장: 최봉주(崔鳳周) 경상도지부장: 채기중(蔡基中) 충청도지부장: 김한종(金漢鍾) 전라도지부장: 이병호(李秉昊) 해외 안동(현재 단둥[丹東]): 안동여관(손회당[孫晦堂] ), 봉천: 삼달양행(정순영[鄭淳榮]) 만주사령관: 이진룡(李鎭龍) · 김좌진(金佐鎭) 광복회는 본부를 경주 박상진의 집에 설치했다. 광복회는 박상진의 주도하에 결성되었기 때문에 그 의 거주지인 경주에 본부를 설치한 것이다. 본부에 참여한 이들은 경주와 대구를 오가며 활동했고, 대 구에서의 활동은 상덕태상회(尙德泰商會)가 중심이 었다. 따라서 대구의 상덕태상회는 경주에 설치된 본부 기능을 분담하고 있었다. 광복회는 1915년 조직된 후 국내외로 조직을 확 대했다. 먼저 길림광복회를 설치했다. 길림광복회 는 1915년 12월 국내에서 파견된 우재룡이 중심이 해방 직후 상덕태상회의 모습(『민주중보』 1946.1.3) 광복회 만주사령관 김좌진 (1889~1930,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