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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앞장서서 동지 김재갑 홍종흠 이용민등과 함께 주모하여 주민 백여명을 규합 모두 백립을 쓰고 동년 4월 8일 문장대에 올라가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손모아 천지산명에게 기원하고 다음날인 4월 9일에는 용화에서 김성희 정양수와 함께 주민 백여명이 시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일본관헌에게 잡혀 서울감옥에서 1년 6개월의 옥고를 겪고 출옥후 왜정의 감시와 위협속에서도 오직 나라사랑하는 일념으로 서당을 차려 후진들에게 민족혼을 심으고 기리기에 전심진력하며 순국의사 운강 이강년 창의대장의 유해가 제천땅에 가장되어 있었음을 한탄하고 1944년 동지 이원재와 함께 밤낮 7일을 산속으로 숨어 일본관헌의 눈을 피하여 옮겨다 입석리 지금의 묘소자리에 안장하였으니 애국의사를 섬기는 마음은 곧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리라. 그토록 염원하던 조국은 광복되었으나 국가분단의 한을 품은채 1957년 10월5일 향년 75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이제 여기 고장의 우리들은 공의 애국심을 귀감으로 본받아 영원히 기리고져 촌석에 새기노니 공의 충혼은 드높은 문장대의 영봉과 함께 거룩하게 이땅에 영원히 살아계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