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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독립운동 • 광복회 조직 63 의 실력양성이나 의병 전쟁의 무력투쟁만으 로는 식민지배를 극복 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 산되었다. 이러한 인식 은 ‘독립전쟁론’으로 이 어졌다. 독립전쟁론은 국외에 독립군을 양성 해 일제와 전쟁을 전개 해 독립을 달성한다는 방략이었다. 광복회는 이러 한 독립전쟁을 실현하기 위해 국내에서 창립된 비 밀단체였다. 광복회는 1915년 음력 7월 15일에 창립되었다. 1910년대 국내에서 조직된 독립의군부 · 풍기광복 단 · 민단조합 · 달성친목회 · 조선국권회복단과 한말 의병전쟁과 계몽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연합해 창립했다. 광복회 참여자들의 운동노선은 의병전 쟁 계열의 복벽주의(復辟主義)와 계몽운동 계열의 공화주의(共和主義)로 나뉘어 있었다. 이처럼 노선 이 달랐음에도 독립전쟁과 광복을 목표로 뜻을 모았 다. 창립장소는 대구의 달성공원이었다. 광복회에는 다수의 독립운동가가 참여하고 있어 결성식에 많은 회원이 참여해야 했고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 는 일반인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곳이 필요 했기 때문이다. 광복회원들은 “우리는 우리 대한독립권(大韓獨立 權)을 광복하기 위하여 우리의 생명을 바칠 것은 물 론이요, 우리의 일생에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때는 자자손손(子子孫孫)이 계승하여 불구대천(不俱戴天) 의 원수 일본을 완전히 축출하고 국권을 완전히 회 복하기까지 절대불변하고 일심전력할 것을 천 지신 명께 맹세”한다고 서약한 후 광복회를 창립했다. 광 복회원들은 조국을 회복하고 원수 일본을 몰아내어 우리 동포를 구하는 것이 한민족의 천직이자 의무라 여기고 광복회를 결성한 것이다. 광복회의 목적은 국권을 회복하고 독립을 달성하 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만주에 사관학교를 설치하 고 독립군을 양성해 무력이 준비되면 일제와 전쟁 을 전개하고자 했다. 광복회원들은 원수 일본을 몰 아내고 국권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의무라 여기고 있었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해 대구 달성공원(1924년, 서울역사아카이브) 우재룡이 작성한 「대한광복회 내력」 (독립기념관 제공) 광복회 사령관 박상진 (?~1919, 국가보훈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