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page
6월의 독립운동 • 6·10만세운동 61 로 튀어나와 격문을 뿌리며 “조선독립만세! 대한독 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이동환, 박용규, 유면희 등 이 미리 나누어 받은 격문을 뿌리면서 역시 “조선독 립만세!”를 외쳤다. 만세를 부르다 현장에서 붙잡힌 중앙고보생 수는 69명, 후일 추가로 붙잡힌 학생까 지 합하면 1백여 명에 이른다. 이어서 인산 행렬이 청계천 4가 관수교를 지나자 이곳에 있던 연희전문의 이병립, 박하균 등도 “조선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태극기를 흔들고 격문을 뿌 렸다. 연희전문 학생 권오상, 한일청 등 50여 명이 이에 호응했고, 결국 40여 명의 학생이 경찰에 붙잡 혔다. 인근에 있던 보성전문 학생 수십 명도 역시 만 세를 불렀다. 행렬이 을지로4가 훈련원 부근에 이르 렀을 때, 경성사범학교 앞에서 박두종 외 2명의 청년 이 격문을 뿌리며 만세를 불렀다. 이들도 경찰에 의 해 체포되었다. 오후 1시 인산 행렬이 훈련원을 출발할 즈음, 다시 부근에서 학생들의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오후 1시 10분경 동대문부인병원(현 한양도성박물관) 앞에서 인산 행렬이 지나간 뒤 『시대일보』 배달부 김락환 외 2명이 호각을 불며 만세를 외치고 격문을 뿌렸다 . 오 후 1시 20분 창신동 채석장 부근에서도 행렬이 지나 자마자 경북 군위 출신의 홍종현이 혈서가 쓰인 태 극기를 휘두르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오후 1시 45분경 행렬을 기다리던 신설동 고무회 사 앞의 군중 가운데에서 학생 1명이 격문 1백여 장 을 살포했다. 이어서 2시 30분경 동묘 앞에서 중동 학교 김재문, 황정환 등이 격문을 살포하고 만세를 불렀다. 서울에서 일어난 이날의 만세시위에는 5백 내지 6 백 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시위 현장에서 체포된 학생은 210명에 달했다. 그리고 경 찰의 진압과 체포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부상을 당 했다. 6월 10일 서울의 시위는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이 후 배재고보의 문창모 등 기독교 계열의 학생들은 2 차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이에 배재고보뿐만 아니라 협성학교, 피어선성경학원, 기독교청년학원(YMCA) 순종의 의장행렬이 청량리를 통과하는 모습 (독립기념관 제공) 6월 10일 순종의 인산 당일 동대문(흥인지문) 앞에서 경계중인 기마경찰(위키피디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