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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녕선생 생가지(李東寧先生生家地)
평생을 독립운동에 몸바친 석오(石吾) 이동녕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이곳에는 9칸 반의 크기의 'ㄱ'자형 안채와 사랑채가 있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바뀐 것이다.
이동녕 선생의 본관은 연안(延安)이고, 이병옥(李炳添)의 장남으로 1869년에 태어났다. 1904년 1차 한일협약의 체결로 국권이 위협받자 상동청년회(尙洞青年會)에 가입하여 애국계몽운동에 투신하였다.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상설(李相卨)등과 북간도의 용정에 망명하여 서전의숙(瑞甸義塾)을 설립하였다.
1907년에 귀국하여 안창호(安昌浩) · 김구(金九) 등과 함께 신민회(新民會)를 조직하였고, 1910년에는 만주로 건너가 이시영(李始榮) 이강영(李康榮) 등과 함께 신흥무관 학교를 설립하였다.
1919년 상해임시정부의 의정원원장이 되었고, 그 후 국무총리, 국무 위원주석의 일을 함께 보았다. 1928년 한국독립당을 결성하여 이사장 이 되었으며, 1935년 한국국민당 당수로 활약하였다. 1940년 중국사천성에서 병으로 사망하여 안장(安葬)하였다가 1948년에 효창공원으로 옮겼다. 1962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