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page
Special Theme • 남만주 최후의 독립군 사령관 양세봉 57 총격을 받고 1934년 9월 20일(음력 8 월 12일) 장 렬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 이다. 그는 죽기 직전에도 “최 후의 성공이 있을 때까지 왜적과 계속 투쟁하라! 조선독립 만세! 조선혁명 성공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신한민보』 1935년 1월 31일자 4면).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퉁화(通化) 일본영사관에서는 경찰을 보내 이미 묻힌 시신을 파내서 목을 자르는 만행을 저질렀다. 광복 80주년, 올바른 미래 전망 계기돼야 수십만 동포가 거주하면서 치열한 항일무장투쟁 을 벌였던 만주 독립운동의 현장은 오늘날 철저히 소외되고 잊히고 있다. 이미 중국 남부지방에 4개나 있는 임시정부 기념관에 더해 2022년 3월 서울에 국 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또 세워졌지만, 사실 상 독립운동의 주무대인 중국 동북지방과 국내에는 이를 기념하고 알리는 공식적인 기념관은 없는 실정 이다. 차별받던 서북지방 출신의 이주 소작농 청년이 별 다른 사심 없이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애국애족을 실천하면서 조국 독립과 사회 개혁, 차별과 불평등 해소를 위한 반봉건·항일투쟁에 헌신한 사실은 우 리 에게 큰 감동과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리는 하 루하루 그저 바쁜 현실을 살아가기에 급급한 것 같 다. 하지만 광복 80주년 8월을 맞이하여 바람직한 미래 전망과 함께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가치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만한 ‘독립전쟁 영웅’의 삶이 아 닌가 한다. 양세봉의 묘가 있었던 고구려 흑구산성(중국 신빈현) 정상부 일대 전경(필자 제공) 양세봉의 피살 사실을 보도한 『매일신보』 기사(1934.9.21) 독립기념관 연구원과 성균관대학교 연구교수, 동북아역사재단 한일관계연구소 장 · 수선사학회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수석연구 원, 동북아역사재단 명예 연구위원, 월간 『순국』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중국 동 북지역 독립운동사』(2022년 독립기념관 학술상 수상) · 『봉오동 · 청산리전투의 영 웅 - 홍범도』 · 『일제강점기 고등교육정책』(공저) ; 『남만주 최후의 독립군 사령관 양세봉』(역사공간, 2016) 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필자 장세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