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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2025년 8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조국광복에 헌신한 순국선열을 다시 본다’ 독립운동 단체가 조직되고 민족운동이 격화되었다. 1922년 여름 독립단 대장 정창하(鄭昌夏) 휘하의 지 방공작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그해 겨울에는 압록강 변에서 활동하던 천마산대(天摩山隊) 독립군에 가담 하여 평북 창성군 대유동의 경찰서와 영림창(營林廠) 을 기습하여 많은 군수물자와 군자금을 모집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1923년 봄에는 일제 군경의 탄압이 심화됨에 따 라 천마산대의 일원으로 지린성(吉林省) 류허현(柳河 縣)으로 이동하여 ‘광복군총영’에 합류하였다. 이 해 에 광복군총영의 검사관, 참의부(參議府) 소대장의 직책을 맡아 활동했다. 1924년 6월에는 참의부 소대 를 이끌고 평북 강계·위원 등지에 진입해서 일제 경 찰대와 교전하였다. 1926년 11월에는 남만주의 독 립운동 영도단체 정의부(正義府) 소속 독립군 제1중 대장이 되어 남만주와 국내의 평안도를 넘나들 며 항 일투쟁에 앞장섰다. 1929년 12월 비밀결사이자 독 립운동 지도정당인 조선혁명당과 그 산하 독립군으 로 조선혁명군이 창건되었다. 이때 조선혁명군 중대 장의 중책을 맡아 독립전쟁의 선봉장이 되었다. 1930년대 조선혁명군 영도와 한·중 합작투쟁 1932년 1월 말에 조선혁명군 사령관의 중책을 맡 아 조선혁명군의 항일무장투쟁을 이끌었다. 또한 1932~1933년 무렵 조선혁명당 중앙집행위원회 위 원 겸 군사위원회 위원도 겸임하여 남만주 지역 한 인 독립운동을 주도하였다. 특히 1931년 9월 일제가 중국 동북지방을 침략한 ‘만주사변’ 이후 요녕민중자위군(遼寧民衆自衛軍) 등 중국 동북에서 봉기한 중국인 의용군과 연합하여 일 제 군경과 괴뢰 만주국군을 상대로 치열하게 싸웠 다. 그해 10월까지 조선혁명군은 당쥐우(唐聚五)가 이끄는 요녕민중자위군과 함께 남두령(南陡 嶺) 전투 등 200여 차례의 전투를 치르며 다수의 일본군과 만 주국군을 무찔렀다. 특히 이 시기에 벌인 신빈현 영 릉가(永陵街) 전투는 조선혁명군이 용맹을 떨친 전투 로 유명하다. 이밖에도 신빈현 진주령(珍珠嶺)에서 일본군 열차 습격전투 및 퉁화현 쾌대무자(快大茂子) 전투도 조선혁명군이 거둔 대표적 승전으로 알려져 있다. 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의 활동으로 상당한 타격을 받은 일제 침략세력, 특히 퉁화 주재 일본영 사관은 남만주 유일의 정통 독립군 사령관으로 동 포사회에서 큰 신망을 얻고 있던 양세봉을 몰래 해 칠 비밀공작을 추진하였다. 결국 중국인 왕밍판의 미주지역 발행 『신한민보』에 보도된 양세봉 등 조선혁명군 활동 기사(1934.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