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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Theme • 남만주 최후의 독립군 사령관 양세봉 55 힐 듯 조국의 산봉우리들이 손짓하는 듯이 보이건만, 다 원수의 말발굽에 짓눌려 죽은 듯하다. 아~ 누구를 위 한 속죄양이냐, 동포는 아는지?”(「3 부·국민부·조선혁명군의 독립운동 회 고」)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양세봉이 이 끈 조선혁명군 독립군처럼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거의10년 동안이나 대일항쟁을 벌인 조직은 없었다. 1995년 8월 광복 50주년에 조선족 동포들과 국내외 유지들의 성원으로 신빈현 왕칭먼(旺淸門) 조선족 소학 교 구내에 높이 5.4m에 달하는 양세 봉 장군의 석상이 세워졌다. 하지만 조선족 동포들이 급감해 이 학교가 폐교되면서 이 훌륭한 석상은 2009 년 9월 말 왕칭먼 강남촌, 사람들의 왕래가 드문 산골짜기로 옮겨졌다. 이제 이 석상마저 옮겨진 지 16년이 흐르면서 곳곳이 부서지면서 풍화되 고 있다. 양세봉의 생애와 1920년대 독립운동 양세봉은 1896년 6월 5일(음력, 양력은 7월 15일) 평안북도 철산군 세리면 연산동(連山洞)에서 가난 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남원(南原), 호는 벽해(碧海)이고, 본명은 양서봉(梁瑞鳳)이다. 양세봉 (梁世奉·梁世鳳)이란 이명으로 더 널리 알려졌다. 11 세 때부터 약 4~5년간 마을 서당을 다니며 천자문 과 『명심보감』 등을 배웠다. 1912년 아버지가 사망하여 가세가 기울자 장남으로서 가족들과 함께 중국 랴오 닝성(遼寧省) 싱징현(興京縣, 현 신빈현[新賓縣])으로 이주하여 소작농으로 일하며 생계를 떠맡았다. 1919년 3·1만세운동 이후 남만주 각지에서 각종 조선혁명군이 함께 연대하여 일본군·만주국군과 싸웠던 요녕민중자위군 사령관  당쥐우 동상(중국 랴오닝성 환런현)  조선혁명군과 함께 삼위일체 조직을 이루었던 조선혁명당·국민부 조직을 몰래  파악해서 보고하는 조선총독부 경무국 당국의 비밀문서(1935년, 황필홍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