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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국선열 • 윤세주 열사 55 밀양 3·1운동 주도, 중국 지린에서 의열단 창립 1901년 6월 24일 경상남도 밀양군 성내 (城內) 노하골(현 밀양시 내이동)에서 군청 서 리(胥吏) 윤희규(尹熺奎)와 경주 김씨 경이(卿 伊)의 4남 1녀 중 4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무송(茂松)이고, 호는 석정(石正·石鼎·石井), 초명은 소룡(小龍), 이명은 윤세수(世洙)·윤정 호(正浩)·윤세호(世浩)이며, 중국에서 석생(石 生)을 필명으로 썼다. 1910년 밀양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4 년간 다녔다. 1911년 김원봉이 조직한 연무 단(練武團)에 가입 활동하며, 단군개천일에 시가행진을 벌였다. 1914년 서울 낙원동 오 성학교(五星學校)에 진학하여 주시경·유근 등 으로부터 교육받고 1917년 3월 졸업하였다. 1919년 고종 장례 참례 차 서울을 다녀온 후 밀양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전홍표의 지 도아래 김병환·윤치형·김소지 등과 3월 13일 내일동 장터에서 시위를 주도하였다. 시위 핵심공적 의열단 창설에 참가하여 무 장투쟁에 나섰으며, 조선 의용대 지대를 이끌고 중국  태항산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였다. ■ 건국훈장 독립장 윤세주(尹世胄) 열사 조선의용대 화북 이동 이끌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 의열단·민족혁명당·조선의용대 리더로 중국 관내 무장투쟁 주도 “망해버린 한국의 충만한 인생을 깊이 아파하네(痛 切亡韓可厭生)  기러기털이 날리는 것처럼 가벼이  희생을 바쳤구나!(鴻毛飛撲供犧牲) 어찌 구구이 남 은 목숨을 구걸하며 늙어 가리오(何須殘命區區老)  이야말로 남아의 멋진 투쟁이 아닌가!(此是男兒一 鬪爭)” -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 장건상이 지은  추도시 글 편집부 주요약력 ● 1901년 6월 24일 경남 밀양 출생  ● 1919년 3월 13일 밀양에서 3·1운동 주도 ● 1919년 11월 10일 중국 지린(吉林)에서 의열단 창단 ● 1920년 의열단 ‘제1차 국내의거’ 참여 ● 1927년 신간회 밀양지회 창립 주도  ● 1933년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교관 ● 1938년 조선의용대 정치조 부조장 ● 1940년 조선민족혁명당 선전부장 ● 1941년 조선의용대 화북(華北)진출 주도 ● 1942년 6월 3일 중국 허베이성(河北省)       써현(涉縣)에서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