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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2025년 8월 Special Theme 광복 제80주년 기념 특집 ‘조국광복에 헌신한 순국선열을 다시 본다’ 국(1932년 3월~1945년 8월) 당국의 거센 탄압으로 어려움을 겪던 양세봉과 조선혁명군 참모들에게 ‘한 중 합작’을 협의하러 가자며 양세봉 등을 샤오황거 우 골짜기로 유인해 결국 양세봉을 암살하고 말았던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과 북한 애국열사릉 에 묘 독립군 장병과 동포들의 5일간의 애도 후에 부근의 고구려 흑구(黑溝) 산성 아래에 묻혔던 양세봉의 시신은 일본군에 의해 다시 목이 잘리는 수 모를 겪어야 했다. 그의 유해는 1961 년 평양 부근으로 옮겨졌다가 북한 당국의 주선으로 1986년 9월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이장됐다. 한편 대한민 국은 1962년 양세봉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는데, 1974년 서울 의 국립묘지(현재 국립서울현충원)에 가묘를 조성했다. 아마도 양세봉은 남북 양쪽의 국립 묘지에 모셔진 거의 유일한 독립운동 가일 것이다. 김일성은 1992년 간행 한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2권에서 무려 24쪽에 달하는 많은 분량을 할 애해 ‘량세봉 사령’과 얽힌 사연을 이 야기했다. 영하 20∼30도를 오르내리는 만주 의 혹독한 겨울철을 이겨내며 양세봉 과 함께 독립전쟁에 참가했던 계기화 는 그 어려움과 한을 생생하게 전했다.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고산준령에서 산짐승과 더 불어, 봄을 맞은 이 기아와 영양실조에 걸린 움직이 는 해골들은 전원 손발에 동상이 걸렸다. 아래로는 압록강의 성스런 물(聖水)이 흐르고 눈앞에 손에 잡 국립서울현충원과 북한 평양의 ‘애국렬사릉’에 있는 양세봉 묘와 묘비(정창현· 낮달 제공) 중국 랴오닝성 신빈현 강남촌 골짜기로 옮겨진 ‘항일명장 양서봉’ 석상(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