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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덕촌리의 독립운동가 ①정순만(1873~1911) 1873년 3월 3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리에서 태어났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전기 의병에 참여한 뒤 1896년 독립협회에서 활동하였다. 1898년 11월 만민공동회에서 민중 계몽과 항일 운동에 앞장섰고, 상동청년회 활동을 주도하였다. 1904년 3월에는 적십자사 설립 운동과 보안회 등의 활동을 펼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 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06년 덕신학교 설립을 발의한 후 이상설李相高·이동녕李東寧과 함께 연길현 용정촌에 서전서숙瑞甸書塾을 설립·운영하였다. 1907년 블라디보스토크로 이동하여 헤이그 특사를 지원하기 위한 의연금을 모금 하였고, 1908년 2월 26일 해조신문海潮新聞 창간을 주도 하였으며, 대동공보大東共報 주필을 맡아 애국 계몽 및 민족의식 고취에 힘썼다. 1909년 '안중근安重根 의거 계획에 참여하였고, 1911년 5월에는 홍범도 등과 함께 국내 진공 작전을 논의하는 등 무장 독립 투쟁론도 견지하였다. 정부에서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②정양필(1892~1975) 정순만의 아들로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 1905년 독립투사 박용만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후 미국 내 최초 설립된 한인군사학교인 '한인소년병학교韓人少年兵學校'에 1909년 사관생도로 입교하여 항일투쟁에 필요한 전투훈련 수업을 받고 1914년 졸업하였다. 1919년 한성임시정부 평정관 1942년 12월 대한인국민회大韓人國民會 디트로이트 지방총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임시정부 지원금인 인구세, 광복군 지원금인 혈성금 등 수차에 걸처 군자금을 제공하고 일생을 조국의 국권회복 운동을 위해 헌신하였다. 정부에서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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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이화숙(1892~1979) 독립운동가 정순만의 며느리이자 정양필의 부인이다. 이화학당 1회 졸업생으로 상해 애국부인회 회장으로 임시정부 재정지원과 동포 구원활동 을 하였다. 1920년 임시정부의 외곽 후원단체인 상하이 거류민단의 상의원으로 활동하 다가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정양필과 결혼한 이후에도 독립운동자금 출연 등 조국 독립을 위한 후원 활동에 전력을 다하였다. 충북 여성독립운동가 12명 중 1명으로 충북미래여성프라자에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 정부에서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④정해원(1900~1984) 1900년 2월 5일 청원군 옥산면 덕촌리77 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청주 공립농업학교 1학년 재학 중에 3·1운동을 계획하고 등사판으로 경고문 300매를 인쇄 하다가 사전에 발각되고 체포되어 퇴학 처분받았다. 당시 청주공립농업학교 학적부에는 “3·1운동자"로 퇴학 사유가 기재되었다. 1956년 11월 1일 현 청주농업고등학교에서 제8회 명예졸업자 졸업장을 수여 하였고, 정부에서 2022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⑤양재성(1899~?)1899년 7월 24일 옥산면 덕촌리 60번지에서 출생하였다.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 33인은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거족적인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당시 '우리 2천만 동포에게 경고함' 이라는 제목의 문서를 입수하여 청주 공립농업학교에서 등사판으로 300여매를 인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5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 2021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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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탐방시에는 정순만,정양필,이화숙 3분의 안내판이 있었는데, 정해원,양재성 2분이 추가 되었다.